6위. ‘미녀새’로 추앙받는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에게 어울릴 법한 성적이 아니다. 세계기록을 27번이나 작성한 이신바예바.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각각 2개의 금메달을 따낸 여자 육상의 아이콘. 2009 베를린세계선수권 결선 탈락이 ‘이변’이었다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 6위는 ‘이신바예바 시대의 마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신바예바는 우선 전략에서 지고 들어갔다. 최규정 체육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시기에 뛰기 시작하니까 몸도 덜 풀렸고 따라가는 입장에서 경기를 운영하게 됐다”며 “쫓아가는 상황이 압박감으로 작용했고 결국에는 경기력 저하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이 열린 30일 이신바예바는 결선 첫 번째 시기인 4m30은 물론이고 이후 4m45와 4m55를 모두 건너뛰었다. 이날 우승한 파비아나 무레르(30·브라질)도 4m55부터 뛰었다. 4m65를 가볍게 뛰어넘은 이신바예바는 4m70을 건너뛰고 곧바로 4m75에 도전했다.

한 차례 실패 후 4m80을 두 번 뛰었지만 모두 바에 걸리며 경기를 마쳤다. 낮은 시기에서는 뛰지 않다가 중반 이후부터 경기에 참가하는 것은 이신바예바 특유의 전략이다. 기록이 걸려 있는 경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나 이는 기량이 받쳐주던 전성기 때나 가능한 전략이다. 이제 이신바예바는 5m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선수가 아니다. 이번 시즌 개인최고기록이 4m7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4m65 이후 4m75에 곧바로 도전한 것은 무리수로 볼 수밖에 없다.

최 수석연구원은 “장대높이뛰기에서는 차례차례 높이를 높여가며 실수를 교정하는 과정을 통해 게임이나 분위기에 적응하는 종목인데 이신바예바는 적응이 늦었다. 그게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신바예바는 이날 도움닫기에 들어가기 전 주문을 외는 듯한 준비동작도 평소보다 길었다.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최 수석연구원은 “장대높이뛰기도 사격이나 양궁처럼 정신적 상태가 경기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며 “준비시간이 길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떨어진 증거”라고 말했다.

대구 = 이화종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