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는 작았다. 아름답지도 않았다. 짧게 자른 머리에 스포츠 고글을 쓴 모습은 남성 같기도 했다.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전이 시작하기 전까지 마르티나 슈트루츠(30·독일)에게 주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부모님과 코치를 빼고는. 실력도, 외모도 모든 것이 부족해 보였다.

독일 북부 슈베린에서 태어난 슈트루츠는 장대높이뛰기를 시작한 10대부터 20대까지 ‘빛’을 전혀 보지 못했다. 2000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주니어세계선수권에 나가서 5등을 한 것이 인생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니어 무대에 나선 뒤로는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같은 메이저급 국제대회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고작 4m30~4m40을 왔다갔다 하는 실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독일에서 슈트루츠의 별명은 ‘퍼기(puggie)’였다. 얼굴이 눌려 있는 듯 주름이 심하고, 작고 땅딸한 ‘퍼그’라는 개를 빗댄 말이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로는 어울리지 않는 160㎝의 단신. 거기에 여성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근육으로 무장한 슈트루츠였다.

슈트루츠를 지도하는 토마스 슐트 코치는 지난해 시즌이 끝난 후 결단을 내렸다. 슈트루츠를 ‘개조’하기로 했다. 일단 장대높이뛰기에 불필요한 근육 제거작업에 들어갔다. 식이요법을 병행해 약 5.5㎏을 감량했다. 허벅지나 엉덩이 근육의 부피를 줄여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몸이 됐다. 기술적인 문제점도 보완했다. 개조작업을 마친 슈트루츠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지난해까지는 개인 최고기록이 4m50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4m70 이상을 잇달아 기록했다. 세계선수권 A기준기록(4m50)을 가볍게 넘었다. 7월에는 4m78을 뛰어 9년 된 독일 여자 장대높이뛰기 기록을 새로 쓰기도 했다. 나이 서른에 찾아온 전성기였다. 그러나 더 큰 영광은 달구벌에서 찾아왔다.

30일 열린 대구세계육상선수권 여자 장대높이뛰기 결승에서 슈트루츠는 거침이 없었다. 결선 첫 점프인 4m45에서 실패해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4m70까지 전부 한 번에 통과했다. 4m80을 넘었을 때는 1위로 올라갔다. 슈트루츠에게는 꿈같은 일. 스스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고 물었다. 짙은 고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감정이 북받치자 육체도 흔들렸다. 4m85와 4m90에서는 잇따라 실패하며 은메달에 그쳤다. 그는 “4m85를 뛸 때부터는 (감정 때문에) 다리가 이미 떨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름답지 않은 슈트루츠. 그러나 이날만은 제일 빛나는 선수였다.

대구 = 이화종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