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 갑자기 몰아닥친 규모 5.8의 지진은 미국민들을 다시 한번 긴장시켰다. 대규모 지진은 서부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에 워싱턴과 뉴욕 등 동부지역은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져 왔다. 시민들은 건물이 흔들리는 강력한 지진에 놀라 거리로 뛰쳐 나왔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이 패닉 상태임을 보여줬다.

이날 지진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1시51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 업무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때다. 기자들이 머물고 있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센터에서도 건물이 강하게 흔들렸고, 내외신 기자들은 황급히 비상계단 등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백악관에서 두 블록 떨어진 이곳 거리에는 이미 관공서와 호텔, 식당 등에서 빠져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모두들 겁먹은 표정이었고, 동료들과 상황 파악을 위해 걱정스럽게 대회를 나눴다. 휴대전화는 지진 직후 통화가 되지 않아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국의 민방위훈련을 보는 듯,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이 같은 이국적 광경은 1시간가량 계속됐다. 미 CBS방송 워싱턴지국에 근무하는 캐롤라인 로린은 “건물이 흔들리기 전에는 큰 트럭이 도로를 지나가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이내 걱정스럽게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고 말했다.

최초의 지진이 발생한 지 1시간쯤 흐른 2시46분과 3시20분쯤에 규모 2.8, 2.2의 후속 지진이 이어졌지만, 이는 감지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규모 5.5 이상의 지진이 돼야 건물이 흔들리는 위험을 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인근 도서관에서는 비치해 둔 서적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워싱턴의 지하철은 감속운행에 들어갔다.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거주하는 브루스 리는 “오후 2시30분 워싱턴 시내 펜실베이니아 거리의 사무실에서 미팅 약속이 있었는데 열리지 못했다”면서 “곧바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평소 30분 걸리던 게 1시간30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는 백악관과 의회, 국방부 직원들이 모두 긴급 대피 행렬에 동참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우체국도 다음 날 영업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워싱턴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데서 시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AP통신에 따르면 1900년 이래 미국에서 일어난 규모 5.8 이상 지진들은 캘리포니아에서만 50건 발생했다. 버지니아에서는 규모 2~3 정도의 경미한 지진만 발생해 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9·11테러 10주년을 앞두고 또 다른 테러 공격이라고 겁을 먹기도 했다.

이날 지진은 워싱턴, 뉴욕을 비롯해 미 동부 연안지역을 관통했다. 밑으로는 조지아주에서부터 버지니아, 오하이오, 뉴욕, 보스턴을 거쳐 캐나다 토론토와 오타와 등지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동부 연안의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도 지진이 감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골프를 치다 지진을 느끼고 곧바로 재닛 나폴리타노 국토안보부 장관, 윌리엄 데일리 백악관 비서실장,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콘퍼런스콜(전화회의)을 하고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워싱턴 =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