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들이 저보고 동메달 따라고 하시는데 조금 섭섭합니다. 저는 금메달을 따고 싶거든요.”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까지는 꼭 30일이 남았다. 대회 개최국인 한국의 메달 전망은 밝지 않다. 메달은 고사하고 결선(10위)을 장담할 선수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팀에서 사실상 유일한 메달 후보는 남자 경보 20㎞에 출전할 김현섭(26·삼성전자)이다.

김현섭에게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어떤 성적을 기대하느냐고 물었더니 ‘금메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자신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 “훈련하며 이미지트레이닝도 함께 하는데 저는 금메달 따는 모습만 생각해요. 게임운영을 어떻게 할지부터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시상대에 서는 모습까지….” 운동선수들이 대회 전에 으레 하는 허풍이 아니다. 실제로 실력이 늘었다.

김현섭은 6월에는 대구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했고, 7월1일부터는 강원 고성군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이번 훈련을 통해 그동안 약점으로 지적받은 체력을 상당부분 보완했다. 그동안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경쟁할 때마다 체력이 문제가 됐다. 항상 8∼12㎞ 구간에서 처졌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김현섭은 “예전에는 12㎞를 지나면 스퍼트를 못했는데 이제는 후반에도 처지지 않는 게 스스로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매주 100∼110㎞를 소화하고 있고, 앞으로 130㎞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민호 삼성전자 경보팀 코치는 “지금은 몸상태가 중간쯤 되고 8월초가 되면 최고조로 올라올 것”이라며 “세계선수권에서 14㎞ 지점까지만 선두권을 유지하면 상당히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좋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김현섭은 남자 경보 20㎞에서 세계랭킹 7위(1시간19분31초)다. 김현섭 위로는 중국선수가 셋, 러시아선수가 셋이 있다. 김현섭은 러시아보다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대구와 비슷하게 더운 오사카대회(2007년) 때 러시아 선수가 레이스 도중 쓰러졌습니다. 유럽 선수들은 무더운 아시아에서는 힘을 잘 못 쓰지만 중국 선수들에게는 대구 날씨가 낯설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올시즌 세계랭킹 1∼3위 자리를 중국이 독식하고 있다. 1위 왕젠(1시간18분30초)을 비롯해 추야페이(1시간18분38초), 첸딩(1시간18분52초)의 실력이 엇비슷하다.

김현섭과 함께 ‘중국세’에 맞설 선수는 박칠성(29·국군체육부대)이다. 박칠성의 주종목은 경보 50㎞지만 대구대회 때는 20㎞ 종목에도 나선다. 초반부터 빠르게 치고 나가 선두권을 뒤흔드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김현섭은 세계선수권을 마치고 오는 11월 말에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다. 김현섭과 백년가약을 맺을 예비신부는 동갑인 신소현씨. 이미 오래전부터 가정을 꾸려왔지만 운동하느라 결혼식이 미뤄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아들 민재(5)도 있다. 오전·오후·야간훈련까지 소화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매일 저녁 민재와 하는 영상통화는 김현섭에게는 ‘피로회복제’다. 민재는 세계선수권이 뭔지도 모르고 ‘아빠’가 집에 올 날만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운동한다고 가정에 소홀했는데 대구세계육상선수권에서 꼭 메달을 따서 가족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습니다.”

이화종기자 hiromat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