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서 시작된 일본의 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인재(人災)’로 비화되고 있다. 도쿄전력이 제1원자력발전소 1~4호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일 정부도 책임을 도쿄전력에 전가하면서 이번 사태가 사실상 통제불능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지역에서 추위와 식량난, 전력난 등을 묵묵히 견디며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시민들과 달리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등은 안일하게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고 외신들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은 이번 위기를 다루는 컨트롤타워인 ‘도쿄전력’과 ‘정부’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도쿄전력의 늑장대응은 심각하다.

원전 안전대책은 운전중단, 노심의 과열을 억제하기 위한 냉각, 방사성 물질 누출을 막기 위한 폐쇄 등 3가지다. 하지만 이번 사태 이후 제대로 된 것은 운전중단밖에 없다. 16일에도 3호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고 일 당국은 발표했다. 그러나 도쿄전력 한 직원은 “이미 15일부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고 증언했다. 이 직원은 화재 확인 후 소방서에 2번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4호기에서도 15, 16일 이틀 동안 화재가 발생했지만, 도쿄전력은 15일 화재 진화여부는 파악조차 하지 않은 채 16일 오전 6시20분 화재 신고를 했다. 실제 화재 발생시간은 오전 5시45분쯤으로 30분 이상 경과된 후에야 조치를 취한 셈이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2호기의 격납용기에 문제가 생긴 것도 사고 이후 대응상의 문제점으로 볼 수 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이 16일 격납용기 손상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는 순간 도쿄전력은 “흰 연기 발생 원인을 알 수 없으며 방사선량과 수증기 증가는 2호기 때문”이라고 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어 17일에는 킬로파스칼(kPa)이 아닌 파스칼(Pa)로 압력단위를 계산, 사태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혼선이 빚어졌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간 총리는 도쿄전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자신이 현 상황을 직접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이날 오후 총리관저에서 사사모리 기요시(笹森淸) 내각특별고문을 만나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면 동일본이 무너질 수 있다”며 “그러나 (도쿄전력은) 최악의 사태에 대한 위기감이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나는 원자력에 대해 무척 정통하다”고 자임하면서 “이 문제에 정통하기 때문에 한창 위기감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 총리 자신도 위기관리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일본의 리더십 결함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질타했다.

NYT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단 한번도 없었다”며 “위기에 단련되지 않은 일본 지도자들은 즉각적이고, 명백하면서 시의적절한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미기자 always@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