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아무리 위험해도 집을 버릴 순 없잖아요.”

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7일째가 되는 17일, 일본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시에서는 상당수의 일본인과 외국인들이 외부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난을 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고향과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안정을 찾고 있었다.

이날 오전 센다이 시내의 길거리에서 만난 회사원 사카모토(28)는 “남들처럼 피난을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집을 떠날 수는 없었다”며 “지진 피해가 크지 않은 시내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금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고 해서 바로 고향을 떠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카모토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일본인은 의외로 많았고 이들은 단전과 단수가 해결되는 도심에서부터 서서히 안정적인 일상을 되찾고 있었다. 16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JR센다이역 부근의 상가에서는 이제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열고 영업을 시작하고 있었고, 일부 식당과 편의점 앞에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음식을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택시기사 오오타(55)는 “지금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 발표하는 내용들을 들어보면 불안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집을 버리고 피난 갈 수는 없다”며 “도시 전체가 텅 비어 집에 도둑이 들거나 여진으로 붕괴되거나 하면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떻게 생활을 시작하느냐”고 피난 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최악의 경우 자신의 고향과 집에서 최후를 맞겠다는 결연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의지를 보이는 이도 있다. 센다이 시내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민간 기숙사를 운영하는 사가(40)는 “지금 일본에서 자기 집만큼 안전한 곳이 있을지 싶다”며 “정말로 원전이 폭발하거나 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해외로 나가지 않는 이상 일본 본토 전체가 위험에 빠질텐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집에서 최후를 맞겠다”고 말했다. 사가가 일하는 기숙사에 머물던 1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들은 지진이 발생하고 원전 폭발의 위험성이 높아지자 모두 자국으로 일시 귀국해 몸을 피했지만, 그는 “유학생들이 돌아오면 또다시 따뜻하게 맞아 줄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곳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쓰나미 피해를 보지 않은 센다이 중심가 아오바(靑葉)구 등 시내에서는 단전과 단수 문제가 해결되고 노선 버스 운행이 재개되는 등 시민들이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할 수 있을 정도의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도시가스와 가솔린 등의 석유 공급이 원활치 않아 최소한의 안정을 찾기까지는 1개월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주민들은 예상하고 있다.

센다이 = 박준희특파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