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왕정체제 시절 국기가 반(反)카다피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벵가지, 투브루크 등 각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녹색의 현재 국기 대신 왕정 국기를 흔들며 행진하는가 하면, 일부 재외 리비아대사관들은 왕정 국기를 게양해 카다피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 이에 따라 왕실이 과연 포스트 카다피 체제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왕정체제 때 국기는 1951년 이탈리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채택된 것으로 1969년 카다피의 쿠데타로 폐지됐다. 현재의 무늬 없는 녹색 국기는 카다피 정부가 1977년에 채택한 것이다. 리비아에서 녹색은 곧 카다피를 상징한다. 카다피의 정치이념이 담긴 책도 녹색 표지 때문에 ‘그린 북’으로 불린다.

왕정 국기는 녹색, 검은색, 붉은색 띠와 초승달, 별 문양으로 이뤄져 있다. 녹색은 이슬람의 평화사상, 붉은색은 이탈리아로부터의 독립투쟁과정에서 투사들이 흘린 피, 검은색은 엘 세누시 왕가를 중심으로 한 통합을 뜻한다.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 종교를 상징하는 문양이다.

알 세누시 왕가의 이드리스 1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등 연합국과 손잡고 식민지배국인 이탈리아에 대한 저항을 이끌었다. 이드리스 1세는 전쟁이 이탈리아의 패전으로 끝나자 연합국들과 협상을 벌여 독립을 쟁취했고, 1951년 리비아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독립한 지 20년이 채 안된 1969년 카다피는 쿠데타를 일으켜 왕실을 무너뜨렸다. 이집트로 망명한 이드리스 1세는 1983년 사망했다.

전문가들은 시위대가 왕정 국기를 들고 나온 것은 1969년 이후 42년에 걸친 카다피 체제를 부정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하고 있다. 카타르대의 유세프 부안델 교수는 24일 알자지라 인터넷판과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카다피가 쿠데타로 훔쳐간 리비아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는 갈망을 왕정 국기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왕정 국기가 곧 왕정체제에 대한 복귀를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지적이 대부분이다. 카타르 도하에 있는 리비아정보센터의 아와드 엘페이투리는 “현재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30대 전후의 젊은이들은 왕정에 대한 기억이 없다”면서 “왕실에 대한 충성, 연대감보다는 법과 질서가 존재했던 옛 시절에 대한 일종의 노스탤지어”로 지적했다.

한편 영국 런던에 체류하고 있는 왕자 무함마드 알 세누시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학살 중단을 위한 국제사회의 도움이 시급하다”고 호소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