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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말이에요. 마음먹은 길을 끝까지 가볼 거예요. 옳은 길이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저의 밤바다를 건널래요.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어요. 대신…무조건 가지는 않을게요. …많이 생각하고 제 마음도 챙길게요. …주위도 살필 거예요.”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 ‘밤바다 건너기’(문학과지성)의 주인공 ‘연우’의 말이다. 현직 교사이자 소설가인 강미(44)씨가 펴낸 소설은 이란성 쌍둥이인 고등학교 3학년 아들, 딸을 둔 한 가정을 중심으로 학교와 집,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밤바다 건너기’는 소위 1318세대를 다룬 청소년소설에 속하지만, 작품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그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는 훌륭한 사회소설의 전형으로 꼽을 만하다. 교육현장 일선에 몸담고 있는 작가의 소설인 만큼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이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은 물론 부모의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까지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예리하게 들춰냄으로써 우리가 도대체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청소년들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곰곰 생각하게 만든다.

소설의 중심축은 쌍둥이 남매인 여고생 연우와 남학생 동우다. 공부는 잘하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깍쟁이인데다 이기적이기까지 한 연우.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들어가서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가 여부다. 그런 연우와는 달리 공부에는 취미도 없을 뿐더러 불합리한 일이 생겼다 하면 참지 못하고 주먹부터 날리고 보는 동우는 각종 징계처분에다 사고 때문에 합의금까지 물어줘야 한다. 이처럼 판이한 쌍둥이 남매가 서로를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버스 운전기사인 아버지 종술씨는 부도덕한 사장 때문에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파업에 합류하고, 연우네 가족은 그에 따른 생활고로 허덕인다. 게다가 사고로 큰아들 동세를 잃은 어머니 명옥씨는 눈물과 술로 나날을 보낸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겨우 버는 명옥씨에게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안위 같은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돈도 제대로 벌어오지 못하는 무능한 아버지, 먼저 보낸 아들 생각에 가슴을 움켜쥐고 사는 어머니 모두 연우에게는 마뜩지 않다. 고3 수험생인 자신을 뒷바라지해주기는커녕 부담스럽고 창피한 것이다.

동우 역시 학교와 집에 대해 불만이 가득하지만 한가닥 가족에 대한 연민을 떨칠 수 없다. 소설 말미에서 동우는 결국 깨우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고개가 푹 숙여진다. 동우의 눈에 아버지의 뒷덜미가 들어온다. 검고 주름진 피부 위로 척추뼈가 도드라져 있다. 동우는 저 뼈가 받치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본다. 그 얼굴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과 연우였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한 발 더 나아가 연우와 동우 가족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도 눈길을 주고 있다. 넉넉한 환경에서 부족한 것 없이 행복하게 살 것만 같았던 친구들, 창미와 진석에게도 타인에게 쉽사리 털어놓기 어려운 그늘이 존재하고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거부해서는 안될 저마다의 ‘밤바다’, 즉 자신 앞에 놓인 각자의 삶과 마주하고 있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제각각 입체적으로 펼쳐 치밀한 작품구성을 돋보이게 한다. 아울러 장면들을 섬세하게 다듬어 소설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고 있다.

작가는 “청소년 세계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청소년을 이해하고자 하는 어른들도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요즘 애들을 모르겠다고만 할 게 아니라 부모의 갈등과 고민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청소년 소설에 어른들의 목소리를 담게 됐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통해 부모의 어려움을, 교사와 부모는 소설에서 아이들의 고충을 읽었으면 하는 것이 작가의 바람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