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본 도쿄에 위치한 한 양로원에서 사회복지사가 치매 노인에게 음식을 먹여주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2009년 8월 일본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54년 지배를 끝내고 정권 교체를 이룬 배경에는 장밋빛 ‘사회 복지 공약’이 있었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은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16세 이하 자녀 한 명당 수당 2만6000엔 지급, 고등학교 무상 교육, 국민연금 월 7만엔 최저 보장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재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발된 공약은 현실에 부딪혔고, 오히려 국민들 사이에서 ‘복지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불러왔다. 하토야마 총리의 지지율은 급락했고, 그의 조기퇴진을 불러왔다.

이어 등장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지난 해 6월 취임 직후 ‘재정, 세제, 사회복지의 일체화’를 내걸고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세제 개혁에 나섰다. 하지만 이 역시 국민의 반발 속에 진행되지 못했고, 일본 정부는 사회복지 예산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하면서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 현실성 없는 선심성 복지 = 민주당의 화려한 복지 공약은 재정 부족으로 대부분 수정됐다. 예를 들어 자녀수당은 지난 해부터 지급되고 있지만 당초 약속한 2만6000엔의 절반인 1만3000엔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절반으로 축소해도 자녀수당을 위해 매년 4조5000억엔의 재원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는 이를 위해 배우자 공제, 16세 이하 부양공제를 폐지하고, 상속세 기초 공제 정액 부분을 인하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공제 폐지 등으로 일반 국민을 더 쥐어짜는 것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또 자녀수당의 50%를 부담해야 하는 지방정부 중 몇몇은 이에 강력 반발하며 부담을 거부하고 있다. 게다가 많은 가정이 자녀수당을 자녀 양육이 아닌 노후를 대비한 저축에 충당하면서 저출산 대책으로 마련된 자녀수당의 본질자체가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혜택은 Yes, 부담은 No = 간 총리는 취임 직후 소비세(부가가치세) 10% 인상을 추진했다. 사회복지 정책 추진을 위한 추가 세수 마련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 이상이 세수 마련을 위한 소비세 인상에 찬성했다. 하지만 간 총리가 실제로 소비세 인상을 밀어붙이자 그의 지지도는 급락했다. 이성적으로는 소비세 인상에 찬성하면서도 실제로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뜻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했다. 간 총리는 올해 들어 복지를 위한 소비세 인상을 다시 들고 나왔다. 하지만 내각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데다 일부에서는 논의 자체를 하반기로 미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 복지에 발목 잡힌 일본 경제 = 재정 및 사회 보장에 대한 근본적 개혁 없이 땜질식으로 진행된 복지 정책은 일본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2011년도 일반회계 예산안은 92조4116억엔으로 2010년도 예산에 비해 1124억엔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사회보장관련 예산은 1조4393억엔 증가한 28조7079억엔으로 역시 사상 최고를 경신했다. 고령화에 따른 자연 증가와 함께 자녀수당 등이 추가된 결과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 44조2980억엔 규모의 국채를 신규로 발행키로 했다. 이는 세수 40조9270억엔을 웃도는 것으로 2009년에 이어 2년째 빚이 세수보다 많게 편성됐다. 이에 따라 일본의 나랏빚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돌파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최근 국채와 지방채를 합한 일본의 국가채무가 올해 연말 GDP의 204.2%로 악화되고 내년에는 210.2%로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129%)보다 높은 규모로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