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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대폭발의 비밀 / 소원주 지음 / 사이언스북스

지난 4월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파야트라요크틀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를 분출한 5일간 유럽에서는 313개 공항이 폐쇄되고 8만2000편의 항공기가 결항됐다. 당시 항공업계가 입은 손실만 20억 달러에 달했으며 전 세계 물류·관광산업에 끼친 피해 역시 막대했다. 영국 런던의 화산재 관제센터(VAAC) 발표에 따르면 세계 경제를 뒤흔든 아이슬란드 화산에서 분출된 테프라(화산재를 포함한 화산분출물) 총량은 0.1㎦였다. 그렇다면 아이슬란드 화산의 1000배에 달하는 100㎦의 테프라가 분출된 화산 폭발이 있었다면 인류 문명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과학 교사 출신으로 캐나다와 일본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저자(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는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10세기 어느 날 백두산에서 100㎦에 달하는 테프라를 쏟아낸 대폭발이 있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00㎦의 용적은 잠실경기장 5만개를 채우거나 남한의 구석구석까지 모두 1m 높이로 화산재를 퇴적시킬 수 있는 용량이다. 서기 79년 로마 폼페이를 매몰시켰던 베수비오 화산보다 50배나 위력이 컸으며 지난 2000년 동안 지구상에서 일어난 화산 분화 중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게 백두산 대폭발이었다. 1981년 일본 북부 지방에서 퇴적된 백두산 화산재를 처음으로 발견했던 화산학자인 마치다 히로시(町田洋) 도쿄(東京)도립대 명예교수는 백두산 폭발로 인해 발해(698~926년)가 쇠망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책은 1989~1991년 일본 최북단 아오모리(靑森)현 히로사키(弘前)대 유학 당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0세기 백두산 화산재를 연구했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두산 대폭발의 진상과 발해 멸망을 둘러싸고 지질학계(화산학계)와 역사학계가 벌인 논쟁의 역사를 치밀하게 추적한 과학 논픽션이다.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의 미스터리는 동해를 횡단해 1000~1500㎞ 떨어진 일본 아오모리나 홋카이도(北海道)에 화산재를 날려 보낼 정도로 강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역사기록이 전무하다는 것. 저자는 동아시아의 질서가 재편되던 10세기 당시 백두산 대폭발에 대한 기록을 남길 정도로 여유로운 왕조가 존재하지 않았고 설사 발해의 기록이 있었더라도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에 의해 훼손됐거나 파기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백두산 폭발과 발해 멸망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백두산의 정확한 분화 연대를 알아야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저자는 무엇보다 그동안의 탄소연대 측정이 오차에도 불구하고 ‘요사’에 기록된 발해 멸망 연대인 926년과 일치하는지 여부에만 초점을 맞춰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한다. ‘고려사’에 934년 발해의 마지막 왕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을 이끌고 왔다는 기록 등을 통해 발해가 926년 시점에 수도 홀한성이 함락됐을 뿐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는 것. 발해 멸망을 전후한 발해 유민들의 대이동과 정복자인 요가 폐현 정책을 통해 발해의 중심지를 오랫동안 비워놓은 것 등을 감안할 때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을 지질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 지역에서 발해로 대표됐던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지역 문명의 붕괴로 시야를 넓혀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