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름회’ 회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트홀에서 열린 ‘희망 2010 따뜻한 겨울보내기 사업’ 유공자 시상식에 참석해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양은영, 온미정, 한창서, 이순영, 안소라씨. 김호웅기자

사랑·희망을 일구는 사람들 - 슈퍼모델 출신들의 봉사단체 아름회


“세계적 패션쇼 무대에 수없이 올랐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도 받았지만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이에요.”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아트홀. 키 180㎝ 안팎의 미녀들이 단상에 오르자 주변이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행사 도우미들인가?”, “웬 젊은 여성들이지?”라는 소곤거림이 일었다.

좌중 앞에 일렬로 늘어선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감돌았지만 긴장감이 역력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최한 ‘희망 2010 따뜻한 겨울 보내기 사업’ 유공자 시상식. 참석한 미녀들은 슈퍼모델 출신 봉사모임인 ‘아름회’ 회원들이다. 시상식에서 이들은 자원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장상을 받았다.

아름회 회원들은 2007년부터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위촉돼 3년째 활동 중이다. 이들은 모금회가 주최하는 자선패션쇼에서 재능 기부를 하거나 자선바자회에도 참가해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불우이웃을 지원하는 2010 따뜻한 겨울 보내기 사업 캠페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의 아름다움과 봉사정신을 알리는 진정한 ‘슈퍼봉사단’이 되고 싶습니다.” 한창서 아름회 회장을 비롯한 아름회 회원들이 갖고 있는 봉사활동의 취지다. 한 회장은 “진짜 ‘슈퍼모델’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갖춰야 할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 있다”면서 “바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이라고 말했다.

1996년 결성된 아름회는 활동 초기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봉사활동’이라는 비아냥도 받았다. 어떤 이들은 ‘모델들이 무엇을 하겠어? 조금 하다 말겠지’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회는 14년 동안 한결같이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처음에는 슈퍼모델 입상자들의 친목모임 성격도 있었지만 이제는 자원봉사활동이 목표다. 자선기금 마련과 문화홍보사절단 등으로 모임의 외연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회원들은 지금도 수년 전 받은 편지 한 통을 잊지 못한다. 발신인은 어느 조선족 소녀로 편지는 중국에서 날아왔다. 편지에는 “언니들 덕분에 살 수 있게 됐어요. 너무 감사드려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름회 회원들은 1997년 조선족 소녀가 소아암에 걸려 죽어가는 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자선패션쇼를 열어 병원비를 보탰다. 이 덕분에 소녀는 생명을 건졌고 회원들은 봉사활동의 기쁨에 눈을 뜨게 됐다.

한 회장은 “아름회 회원들이 힘을 합하면 생명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름회 회원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대전 대덕구 대화동 복지재단 천성원 ‘평강의 집’에서 햇빛보기 행사에 나선다. 햇빛보기는 평소 시설 내에서만 생활하는 장애우들과 함께 외출해 따스한 햇살을 느끼며 푸른 하늘을 보는 행사다. 회원들이 오면 아이들은 “예쁜 언니들 왔다”며 두 팔을 벌리고 품 안으로 안겨 든다. 회원들은 뼈가 쉽게 부러지는 병, 몸 한쪽을 쓰지 못하는 병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며 함께 외출을 한다. 온미정 부회장은 “5년 넘게 아이들을 만나러 가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다”며 “아이들이 밝게 자라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기쁘다”고 전했다.

아름회 회원들은 자매결연단체인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정기적으로 아기들을 돌보고 있다. 대부분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미혼모들이 낳은 아기들이다. 회원 양은영씨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예쁜 아기들을 돌봐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자원봉사활동을 가는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온 부회장은 “패션과 방송 등의 영역에서 가진 회원들의 재능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남을 돕는 일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다”고 전했다.

2011년이면 국내에 슈퍼모델 선발대회가 열린 지 20년을 맞는다. 하지만 아름회 회원들의 ‘아름다운 행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회원들은 그동안 봉사는 드러내지 않고 행하는 것으로 여기고 제대로 활동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회원들은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봉사도 중요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도록 알려 나가는 일도 의미가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름회 회원들은 국내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도 갖고 있다.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서울시장상을 받은 이날에도 회원들은 봉사활동 현장을 향해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한 회장은 “자선바자회와 자선패션쇼 등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해 우리 사회에 봉사활동의 중요성을 알려 나갈 계획”이라며 “‘미(美)’와 ‘봉사’가 만나면 우리가 사는 사회,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일훈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