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미국이 밝힌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사건으로 촉발된 제2차 북핵위기 이후 7년반이 지났으나 현시점에서 6자회담은 잠자고 있다. 지금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 주시해야 할 시점이다.”

6자회담 한국측 초대 수석대표를 역임한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19일 열린 ‘6자회담의 현주소와 전망’세미나에서 북한의 급변사태 대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이 전 차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에서 열린 통일전략포럼 주제발표에서 “북한의 체제적 위기가 불러올 사태는 중국에게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겠지만 북한의 급변 상황으로 인해 미국과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 일은 중국에게 또다른 위기가 된다”면서 6자회담만큼이나 북한 급변사태 대비책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전 차장은 특히 “북핵문제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거부할 수는 없으나, 미국은 북핵문제에 관해 중국과의 전략적 대화없이 중국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쉽지 않다”고 진단, 북핵문제가 향후 한국의 입장보다는 미·중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풀려 나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전 차장은 미·중의 대북피로증이 한국에 미칠 파장과 관련, “미·중 양국이 게임의 규칙을 거칠게 어기고 받아들일 수 없는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북한에 피로를 느낀 나머지 몇 개에 불과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느니 핵무기를 봉쇄하고 통제하는 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 이에 대한 외교적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렇게 될 경우 미·중 양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추인하는 꼴이 될 것이고, 이는 한국이 핵무장한 북한을 상대하는 비대칭적 안보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져 통일의 길은 더욱더 멀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우려다.

이 전 차장은 6자회담틀을 만든 초대수석대표답게 “6자회담 진전이 쉽지 않고, 자주 좌절해 왔지만 6자 포맷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며 다른 대안은 없다”면서도 “6자회담이 성과를 내기 위해선 회담 틀내에서 활발한 북·미 접촉을 권장해야만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특히 “6자회담은 북한이 현재 핵 개발 상태에서 더 나아가지 않도록 잠금장치를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 6자회담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북핵폐기이지만 회담을 통해 북한핵의 불능화 상태를 지속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