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독립운동 이후 ‘문화통치’를 내세우며 부임한 일제 제2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는 한국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조선인 교육시책’이 그것이다. 그의 전략은 노골적이다.

“첫째,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전통을 알지 못하게 해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케 만든다. 둘째, 그들의 선조와 선인들의 무위·무능과 악행·폐풍 등을 들춰내고 과장해 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자신들의 조상을 경멸하는 감정을 갖게 한다. 셋째, 그런 후에 일본의 사적·인물·문화를 소개한다.”

이어 만들어진 것이 조선사편찬위원회다. 위원회 멤버 역시 흥미롭다. 매국의 대가로 400만환(쌀 60만가마)과 200만환을 각각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완용과 박영효 등이 고문으로, 이완용의 조카 등이 편수위원으로 참가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시달된 한국사 편찬 원칙 역시 계획적이다. “첫째, 편년제로 하고, 둘째, 전편을 상고삼한·통일후의 신라·고려·조선·근세사의 6편으로 하며, 셋째, 민족국가를 이룩하기까지의 민족의 기원과 그 발달에 관한 조선 고유의 사화·사설 등은 일절 무시하고 오로지 기록에 있는 사료에만 의존한다.”

사료 수집 역시 노골적이다. ‘공명 적확’하게 편찬한다는 미명 아래 전국에 걸쳐 수색에 나선 것이다. 각 도청과 군청, 경찰서 등을 동원, 압수수색까지 벌였다. 2차 수색에서는 역사와 전통, 문화, 예술, 인물 등과 관련이 있는 전기와 열전, 충의록, 무용전까지도 수거해갔다. 그러나 이들 자료는 거의 역사편찬 자료로 쓰이지 않고, 불태워지거나 일본으로 반출됐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의 한국역사 말살은 1910년 한일병합 직후부터 시작됐다.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취임하자 마자 경찰력을 동원해 지방의 항교·서원·양반가·세도가까지 뒤져 관련 자료를 모두 가지고 갔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조선의 보장(寶藏)들을 남김없이 다 가져가서 어둠 속에 썩히고 있음은 통탄스럽고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탄했다. 일본 황실 도서관인 궁내청 쇼로부(書陵部)에 감춰져 있는 한국 역사 자료들을 지적하며 한 말이다.

2001년에는 한 고서연구가에 의해 900년 전 고려왕실 소장 도서 5종이 이곳에 보관돼 있음이 확인됐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최근 문화재청에 “이곳에 한국고서 639종 4678책이 보관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했다. 단재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26만여권이 쇼로부 등에 깊이 감춰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가 살아남은 것은 당(唐)의 사료를 바탕으로 철저히 신라 입장에서 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을 제외한 미국과 중국, 프랑스, 러시아 등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도 4만6448점에 달한다.

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고려 이전의 역사사료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사군의 ‘낙랑군(樂浪郡)=평양’설(說)만 해도 그렇다. 이는 1913년 조선사편수회의 총책임자인 이마니시 류가 처음 주장한 것인데 정설이 되고 있다. 그 해석을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중국의 ‘사기(史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낙랑수성현유갈석산·장성소기, 樂浪遂城縣有碣石山·長城所起)’라고 적혀 있는데 황해도 수안(遂安)이 그곳이라는 것이다. 수(遂)자가 같다는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발해만 창려군에는 지금도 갈석산이 있다. 그리고 수서(隋書)에 따르면 수나라 때 수성현이 창려군으로 개명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낙랑은 요락수(饒樂水·현 시라무룬강)와 백랑수(白浪水·현 대릉하)의 ‘락’과 ‘랑’을 딴 이름이라 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역사 왜곡은 더 가관이다. 최근에는 갈석산에서 압록강까지 만리장성을 연장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해외에 불법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국제협약상 ‘강제적인 문화재의 반출과 소유권의 양도는 불법으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정체성이 없는 민족은 부초와 같다.

[[오창규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