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팬들에게 ‘반칙왕’으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아폴로 안톤 오노(미국)가 이번에도 어부지리 은메달을 챙겼다.

오노는 14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움에서 치러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ｍ 결승에서 2분17초976을 기록, 이정수(2분17초611)에 이은 2위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행운의 은메달이었다. 결승선을 반바퀴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1,2,3위는 이정수, 성시백, 이호석 순이었다. 오노는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촘촘하게 간격을 유지한 터라 오노는 좀 처럼 추월을 시도하지 못했다. 한국의 올림픽 사상 첫 금, 은, 동, 동반 획득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코너를 돌 때 세번째로 달리던 이호석이 추월을 위해 안으로 파고 들었고 이에 성시백과 걸려 넘어지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호석, 성시백이 미끄러진 사이 오노는 유유히 이정수에 이어 결승선을 통과, 2위를 확정했다.

성시백은 2분45초010으로 5위. 무리하게 추월을 시도하던 이호석은 실격당했다. 대신 오노에 이어 미국의 J.R 셀스키가 2분18초053으로 기대치 않았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뜻밖의 은메달을 확정한 오노는 마치 우승이라고 한 것 마냥 환하게 웃으며 팬들의 환호에 손가락을 치켜세워 답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오노는 한국 선수들과 적지 않은 악연이 있는 선수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전 당시에는 김동성에 이은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영화배우 못지 않은 헐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의 실격 처리를 유도한 바 있다. 또 당시 남자 1000m 경기에서는 금메달 기대주였던 안현수가 오노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메달 획득의 꿈이 좌절되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오노는 이정수를 추월하기 위해 오른손으로 이정수를 밀어 진로를 방해하는 등 불안한 장면을 연출, 오노와의 악연은 계속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정수는 놀라운 순간 스피드로 오노를 따돌리며 선두로 치고 나갔고 금메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노의 명성높은 비신사적 플레이와는 관계없이, 국내 선수 간의 불필요한 순위 경쟁으로 오노에게 ‘은메달’이라는 선물을 안기고 말았다.

<노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