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따라… 골 조직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전담 이발사로 28년간 일해온 이흥억(67)씨가 지난달 사고로 숨지면서 자신의 신체조직을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1일 서울성모병원과 유족측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월18일 성북구 삼선동1가 공원이발소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눈길에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쳤다.

이웃주민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가까운 서울대병원으로 급히 옮겼지만 뇌사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지 1주일 뒤 숨지자 부인 최옥자씨와 두 아들은 평소에 타인을 위해 선행을 베푸는 삶을 살아온 고인의 뜻을 고려해 서울성모병원 장기기증센터에 골 조직을 기증했다.

부인 최씨는 “고인은 평소 김 추기경의 전담 이발사를 해오면서 추기경님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면서 “김 추기경님이 평소에 하셨듯이 나누고 베푸는 것을 좋아했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남편은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 등 불우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찾아다니면서 남몰래 무료 이발봉사를 해왔다”고 덧붙였다.

가족들에 따르면 평소에는 김 추기경을 위해, 쉬는 날에는 이발봉사를 다니다 보니 정작 본인은 가족을 위한 여행을 단 한번도 다니지 못했다. 최씨는 “남편이 가족에게 미안했는지 올해 가족동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약속했는데 결국 불의의 사고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남 이용훈씨는 “아버지는 다른 이들에겐 항상 관대하면서도 자식들에겐 엄격한 분이셨다”며 “남에게 양보하고 살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고 부친을 추모했다.

이씨가 추기경의 전담 이발사가 된 것은 1981년 당시 추기경 집무실 청소를 하던 부인의 소개가 계기가 됐다. 이씨는 지난해 2월 김 추기경이 선종한 뒤 1985년부터 모아온 추기경의 머리카락을 400여개의 봉지에 담아 서울대교구에 기증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부인 최씨는 “김 추기경께서 머리를 깎아달라고 부르신 것 같다”면서 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애도했다.

박양수기자 yspark@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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