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팝송 하나쯤 원어로 외우고 다녀야 폼이 나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그때 외우고 다녔던 팝송은 바로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였다. 감미로운 멜로디도 좋았지만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 준다는 가사 내용은 폼 내며 외워서 부르기에 딱이었다. 그렇게 부르고 다니던 그 시절에도, 그 노래가 아련해진 지금까지도 그런 다리가 실제로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다리를 직접 마주 대하게 됐다.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맨해튼으로 들어가는 길. 버스는 한눈에 보기에도 몹시 낡은 다리를 지난다. 퀸스와 맨해튼을 잇는 길이 1135m의 ‘퀸스보로 다리(일명 59번가 다리)’였다. 사이먼과 가펑클이 수없이 지나다녔고 결국 그 노래의 모델이 되었다는 다리. 뉴욕 퀸스 출신인 그들이 이 다리를 건너 맨해튼으로 들어가던 무명 시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고이는 힘든 시기에 흔쾌히 자신을 눕혀 다리가 되어 주는 그런 존재가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이제 나이가 꼭 100세가 된 퀸스보로 다리의 외관은 많이 낡아 있었다. 하루 100만대 이상의 차량이 이동한다는 명성답게 검은 매연으로 뒤덮인 다리는 여기저기 페인트 칠이 벗겨져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새 다리를 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뉴욕시는 이 다리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깨끗하고 현대적인 모습의 새 다리보다 100세의 나이에 걸맞게 낡은 퀸스보로 다리의 역사를 더 귀하게 여겨서다. 다른 나라에 비해 역사가 짧아 역사적 문화재 등이 적은 미국에서 100년의 세월을 그 자리에 있어준 퀸스보로 다리의 존재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슬프게도 숭례문을 떠올렸다. 퀸스보로의 역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긴 세월을 버텨 주었던 숭례문은 하루아침에 어이없는 화재로 소실됐다. 무명 시절 사이먼과 가펑클의 친구가 되었던 퀸스보로 다리처럼 어린 시절 숭례문 근처에 살았던 나에게도 숭례문은 오랜 친구 같은 존재였다. 누군가 고향을 추억할 때 작은 뒷산과 먼지 풀풀 나는 정겨운 시골길을 떠올린다면 서울이 고향인 나는 화려한 명동의 네온사인과 그곳에서 고고하게 자리하던 숭례문을 떠올렸다. 그래서 숭례문 화재가 남달리 마음 아팠던 나는 퀸스보로 다리를 아끼는 뉴욕시가 부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반만년 역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그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유산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 생각해본다. 편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왕릉 바로 옆에 고속도로를 내는 계획 같은 것은 한번쯤 재고했으면 좋겠다. ‘겨우’ 100세인 퀸스보로 다리는 오늘도 건재한 모습으로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