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빈소가 차려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전·현직 여성 국회의원들의 추모가 줄을 잇고 있다. 이는 여성의 지위 향상에도 앞장서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어머니의 권리가 아버지의 권리와 같아지고 아내의 권리가 남편의 권리와 같아지며 딸의 권리가 아들의 권리와 같아지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박히도록 했다고 박선숙 민주당 의원이 밝혔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 본인의 명패와 함께 이희호 여사의 명패를 나란히 단 것으로 유명한 김 전 대통령은 정치 일선에서도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왔다. 평화민주당 총재 시절인 1988년 13대 총선에서 유명한 여성운동가였던 박영숙 현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을 비례대표 1번에 배정하고 정치권에서 가장 먼저 비례 대표의 절반을 여성에 배정하며 여성의 정치 진출에 앞장섰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엔 여성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1989년 12월 가족법 개정 때다. 호주제도를 약화시키고 이혼여성의 재산분할권청구를 인정하는 등 가족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려던 김 전 대통령은 평민당 의원들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

김 전 대통령은 “총재가 시켜도 이 법은 찬성 못한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지역구 가서 몰매맞는다”며 강력히 반대하던 남성 의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법안 개정을 이끌어냈다.

민병기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