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강경일변도로 치닫던 북·미관계에 모처럼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4일 방북,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 3시간여 회동한 뒤 억류 여기자들과 5일 함께 귀국한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전광석화(電光石火)식 대북행보는 향후 북·미관계에 클린턴 이니셔티브가 가동될 수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북한방송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면담때 북·미 현안을 깊이있게 논의했고 대화로 문제를 풀기로 했다고 연일 보도하며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여기자 석방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북·미 현안협의가 클린턴 전 대통령의 권한밖 일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이번 방북이 북·미냉기류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5일 오전 인디애나주 방문을 위해 백악관을 나서면서 “(여기자 석방을 이뤄낸)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면서 “(방북성과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케냐의 나이로비를 방문중 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핵문제와 여기자 문제는 분리된 것이며 핵문제나 북한과의 향후관계는 북한의지에 달려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북·미관계 전문가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핵 및 북한체제 문제 전반에 대해 포괄적인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결과는 오바마 대통령의 향후 대북구상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때 북핵협상 미측수석대표로 활동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장은 5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북핵문제에 대해 아주 폭넓은 식견을 갖고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동때 여기자문제만 얘기하고 핵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토의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놀랍거나 쇼킹할 일이지 않느냐”고 말해 클린턴-김정일 회동때 상당한 의견협의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했다.

문제는 국제적인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측이 클린턴-김정일 회동결과를 어떻게 대화의 모멘텀으로 이용하느냐에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그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조건에 대한 협상과정에서 북한은 전반적으로 미국에 매달리는 분위기였고 이번 방북과정에서도 그런 분위기는 그대로 반복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국제적인 대북제재 국면을 풀기 위한 고육책일 수 있지만, 북·미관계 개선 시도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임중 대북포괄 협상을 통해 핵문제 해결 및 북·미관계 정상화를 시도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니셔티브가 가동될 경우, 돌아앉은 북·미를 한자리에 앉게 만드는 묘안이 마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