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재개발 지역에서 세입자의 토지·건물 이용권을 제한한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시정비법)’ 조항이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이에 따라 현재 세입자와 합의하지 못한 채 소송을 통해 철거를 추진 중인 재개발조합들은 헌재 결정이 나기 전까지 철거작업을 할 수 없게 돼 도심 재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서울 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김천수 부장판사)는 23일 이모씨 등 서울 용산2구역 세입자 14명이 낸 도시정비법 제49조6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 조항은 정비사업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되면 해당 지역의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 임차권자가 사용·수익권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어, 그동안 용역업체를 동원한 강제 철거의 법적 근거가 돼 왔다.

재판부는 “이씨 등은 조항이 적용될 경우 실질적·형식적 재산권 박탈의 효과가 생기지만 도시정비법에는 아무런 보상 규정이 없다”면서 “이는 공용 필요에 의해 재산권을 수용하면 법률로 보상토록 한 헌법 제23조3항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조항이 등기임차인과 상가임차인 등 임차인 성격에 따라 효력이 서로 달라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이같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용산2구역 재개발조합이 지난해 11월 세입자 22명을 상대로 낸 건물 명도소송 절차가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중단된다. 명도 소송에서 이겨야 철거를 할 수 있으므로 건물 철거작업도 그때까지 할 수 없다.

다른 지역 재개발지역 가운데 건물 철거 관련 명도소송이 진행 중인 곳도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사실상 사업이 중지될 전망이다. 각 재판부가 헌재 결정을 보고 판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관할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받고 사업을 진행 중인 곳은 34군데에 이른다. 착공이 시작된 6곳을 제외면 28곳에서 비슷한 형태의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 서부지법에만 약 30건의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 중에는 지난 1월 ‘용산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도 포함돼 있다.

재판부는 “재개발 과정에서 임차인의 지위가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 변동되는지, 그에 대하여 임차인이 취할 수 있는 권리구제 수단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아 사업시행 과정의 갈등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결정으로 임차인들의 기본권 제한 절차 및 보상에 관한 헌법적 고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버들기자 oisea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