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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맘, 홈 대드(일하는 엄마, 집안의 아빠)’. 엄마는 직장에서 일하고 아빠는 장을 보거나 아이를 돌본다. 전세계가 경제위기의 늪에 빠지고 불황의 그늘이 깊어지면서 가정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인 성(性) 역할도 뒤바뀌고 있다. 남자가 실직한 뒤 가사노동을 책임지고 여자가 직업전선에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남성의 실직률이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크게 늘어난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특히 1930년대의 대공황 이래 최대 불황기에 돌입한 미국에서 뒤바뀐 성 역할이 눈에 띈다. 미국 노동통계국(BLS) 조사 결과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더불어 시작한 금융위기와 실업사태로 인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직장에서 쫓겨난 미국인 10명 중 8명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들이 건설, 철강, 기계, 자동차 같은 ‘경기 민감성’ 업종에 주로 종사한다는 게 그 이유다. 그 결과 현재 미국 전체 노동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49%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생겨난 현상이 ‘워킹 맘, 홈 대드’다. 최근 들어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부부가 함께 돈을 버는 ‘더블 인컴’이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홈 대드’ 현상은 분명히 경기침체 속에서 발생한 또 다른 흐름이다. ‘홈 대드’는 곧 월마트로 상징되는 시장에서 카트를 끌면서 반찬거리를 사는 ‘월마트 대드’ 혹은 아기 옆을 뱅뱅 도는 ‘헬리콥터 대드’를 탄생시켰다.

미국 보스턴글로브지는 최근 한 실업가정을 다룬 기사에서 “실직한 남성들이 가정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아기를 돌보는 건 걱정거리 축에도 까지 못한다”면서 “남자들은 아내가 혹독한 상황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중압감에 빠진다”고 썼다.

디트로이트시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에 다니다 최근 직장을 잃은 40대 미국인 가장 래리 색은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두 딸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얼마나 오래 집에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은 좋은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가정 내의 뒤바뀐 역할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내에서도 최근 재생불량성빈혈 판정을 받은 딸의 간호를 위해 주부가 된 ‘아빠 퀴즈왕’이 화제가 됐다. 지구촌 서점에는 남성의 가사노동을 위한 지침서가 넘쳐나고 온라인에서는 관련 웹사이트와 블로그가 폭주하고 있다. 영국의 온라인 남성 육아 매거진 ‘홈 대드’(HomeDad.org.uk) 운영자는 “올 들어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사이트 접속이 폭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