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김선규기자

영화 ‘미쓰 홍당무’는 한국 영화의 대표주자 박찬욱 감독이 신인 이경미 감독을 발굴해 제작한 영화라서 관심을 잔뜩 모아왔다. 그런 관객의 호기심은 두 감독의 포만감으로 나타났다. 박 감독은 “미쓰 홍당무는 최고 영화”라고 평했고, 이 감독은 “할 만큼 다했다. 수고했다고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다”고 자족했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두 감독은 역시 죽이 맞았다.

뭘 가지고 그럴까.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영화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먼저, 보도 듣도 못한 홍당무 노처녀 ‘양미숙’이란 캐릭터 창조다. 박 감독은 “불세출의 캐릭터다. 어떤 약점, 허점이 있든지간에 이 영화는 오랜 세월을 두고 기억되고 결코 잊히지 않을 생명력을 양미숙을 통해 얻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미숙과 같은 캐릭터를 만드는 성취는 한 감독, 작가가 평생 한 번 이루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뒤에 나올 다른 영화와 비교해 양미숙은 끊임없이 언급될 캐릭터가 될 터다.

둘, 배우 공효진이다. 박 감독은 “그런 배우 처음 봤다”고 했다. “좋은 영화는 다 그렇지만, 두고두고 더 볼 욕심이 난다. 그런데 대부분은 영화 구조가 어떻고, 미장센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이다. 배우 연기 때문이 아니다. 미쓰 홍당무는 공효진 때문이다.” 공효진의 천변만화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열 번 스무 번 봐도 그의 표정은 새롭다. 박 감독은 “극중 고교 교장이 양미숙을 중학교 선생으로 내려보내는 장면을 보세요. 대부분 관객은 처음 대사에만 신경을 쓰죠. 그런데 두 번째 볼 때는 공효진의 표정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고개를 숙였다 얼굴을 드는 표정은 지금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 감독을 ‘발굴’한 게 아니라, ‘유혹’했다고 한다. ‘발굴’은 흙 속에 묻혀 있을 때나 쓰는 말이지, 2004년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최우수상을 탄 이 감독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박 감독은 “이 감독의 당시 작품은 긴 시간을 일관된 톤으로 끌고 나가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조금씩 웃겨나가는 감각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박 감독 밑에서 영화 ‘친절한 금자씨’ 스크립터로 일하며 연출부 경험을 쌓았다. 이 감독은 “박 감독님은 새로운 방식, 화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관객에게 어필할 방안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본인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렇게 배운 결과가 전무후무한 ‘미쓰 홍당무’ 창조라는 얘기다.

이 감독은 “누가 뭐래도 코미디 영화다. 그런데 소외된 왕따 양미숙은 처절하고 절박한 인생이지만, 정색하지 않고 절규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을 실컷 웃게 만든 뒤 ‘너무 웃어서 미안해’란 감정의 잔영을 남긴다”고 했다. “원래 블랙코미디 장르를 좋아했고, 얼굴이 빨개지는 여자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던 이 감독이 ‘미쓰 홍당무’ 촬영 뒤 “할 만큼 다했다”고 자족하는 가장 큰 이유다.

더 나아가 양미숙과 그의 연적인 러시아어 교사 이유리(황우슬혜)가 별 볼 일 없는 유부남 교사 서종철(이종혁)에게 연정을 품지만, 언감생심 ‘마누라’가 아닌 ‘세컨드’자리를 놓고 다투는 귀여움도 보는 재미가 크다. 서종철의 딸인 중학생 ‘종희’(서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중학생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처음 정색하고 불러낸 것도 소득이라고 두 감독은 입을 모았다. ‘미쓰 홍당무’는 16일 개봉한다. 두 감독의 ‘자평’에 관객들이 과연 맞장구를 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글 =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