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40)씨는 지금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을 여행 중이다. 그는 지난 5월 서울의 집을 처분한 뒤 한국을 떠났다. 1~2년간 세계를 떠돌며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미국 뉴욕, 보스턴을 거쳐, 지난 한 달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머물렀고, 지금은 토스카나에서 앞으로 쓸 소설의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 길 위로 떠나버린 그의 부재 중에 그가 도쿄의 길 위에서 쓴 ‘김영하 여행자 도쿄’(아트북스)가 나왔다. 도쿄에 머물며, 롤라이 35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 긴자의 커피숍에서 착상한 짧은 소설 ‘마코토’, 그리고 생맥주의 거품, 하라주쿠의 옷가게 등 보이는 도쿄와 보이지 않는 도쿄의 여러 겹들에 대한 그 특유의 날렵함이 살아 있는 산문들을 엮은 것이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과 세계화로 요약되는 전 지구적 체제로 국경이 사라진 시대, 누구나 세계를 주유하고, 세계적 성취를 거둔 한국 예술가도 쏟아지는 시대이니 ‘외국에서 글쓰기’를 두고도 ‘흔한 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국어’라는 한계 그리고 유난히 한국의 시대와 사회, 역사의 책무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던 한국 문학을 생각하면 세계 속으로 들어가 글을 쓰는 그의 작업은 참 새롭고 흥미롭다. e메일을 통해 그의 작업과 책 이야기를 들었다.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울에 있으면 이런저런 인간관계나 어지러운 인간사에 얽혀들어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작가들이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 글을 쓰는 일이 흔해졌지요.

“그렇습니다. 떠나 살면서 글을 쓰면 집중력은 좀 높아지지만 대신 근원적인 고독감과 싸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는 외국에 나오면 꿈을 많이 꿉니다. 잘 때조차도 정신이 깨어 있는 느낌이고 언제나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그런 긴장이 작품을 밀도 있게 써나가는 데 도움을 줍니다. 소설이라는 게 새롭게 창조한 허구의 세계이기 때문에 작가가 어느 정도 현실적인 인간관계나 구체적 생활의 현장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매달 은행에 가서 공과금을 내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 얼굴을 보면서 쓰는 것도 좋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내 소설의 주인공들과만 지내는 것도 행복한 경험입니다.”

―지난해 ‘김영하 여행자’ 시리즈 첫 권인 하이델베르크에 이어 이번에 도쿄편이 나왔는데, 시리즈의 시작과 끝은.

“하이델베르크에 혼자 머물던 2006년 가을에 구상했어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며 그 도시에 맞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거기서 쓴 소설과 산문을 엮어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여행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한 도시에 오래 머물며 혹은 자주 들르며 그 도시의 느낌을 반추하고, 그것을 다양한 표현 양식으로 담아보고 싶었던 거지요. 즐거운 유희 같은 작업입니다. 한 대의 카메라를 가지고 도시 여기저기를 다니며 즐겁게 놀고, 낮에는 카페 같은 데에 앉아 떠오르는 착상을 노트북에 옮겨 적어보는 일종의 창작 실험 같은 작업입니다. 앞으로 여섯 도시를 더 할 생각인데, 다음 도시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처음 출발할 때 그랬듯 다음 도시들도 즉흥적으로 결정되겠지요. 책을 보는 독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한 도시에 집중해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작업들을 시도해본다면 현대 도시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들이 제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쿄편’에서 작가가 포착한 도쿄는.

“1990년 도쿄에 처음 간 뒤 이런저런 기회로 몇 번 들렀어요. 본격적으로 머문 것은 작년 5월과 올해 2월, 각각 보름 정도였어요. 도쿄를 한마디로 요약할 순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겹이 많은 도시 같아요. 뉴욕이 다문화 도시라면 도쿄는 다층 도시입니다. 여러 번 가서 여러 경로로 파고들어야 서서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인 것 같습니다.”

―길에서 글쓰기는 어떤가요.

“두 달째 여행을 계속하다 보니 익숙한 곳에서 먹던 맛있는 음식이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기록해 남긴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명 관광지의 흔해 빠진 파라솔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관광객들을 바라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여행을 계속해나갈 힘을 얻습니다. 그럴 때, 여행은 인생의 막간이 아니라 인생 그 자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우리는 조금 오래 머문 여행자이고 여행자는 조금 빨리 떠난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오는 9월 캐나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 1년간 방문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소설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그 다음은? 그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