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법원 들어가는 어산지 위키리크스를 설립해 미 군사·외교 기밀문서를 폭로한 혐의를 받아온 줄리언 어산지가 26일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에 도착해 재판이 열리는 미 연방 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EPA 연합뉴스

■ 도피 14년만에 ‘자유의 몸’

위키리크스 통한 군사기밀 폭로
사이판서 유죄 인정하고 풀려나

NYT “수정헌법 1조 위배된 판결
언론, 군사·외교 보도에 큰 위협”

미국 군사·외교 기밀문서를 폭로한 혐의로 기소됐던 줄리언 어산지(52)가 26일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사이판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석방됐다. 간첩법 위반 혐의로 수배령이 떨어지자 도피 생활에 들어간 지 14년 만이다.

26일 외신에 따르면 사이판 소재 미 연방 지방법원은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오전 9시) 법정에 출두한 어산지에 대해 간첩법 위반 혐의로 62개월형을 최종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어산지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재판부가 영국에서 복역한 62개월에 해당하는 형량을 선고하기로 한 미국 정부와의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합의에 따라 진행됐다.

이날 법정에 선 어산지는 라모나 망글로나 판사가 미국 국방과 관련된 기밀 정보를 불법적으로 획득·전파하려고 공모한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묻자 “유죄가 맞다”고 대답했다. 이어 유죄를 인정하도록 강요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며 본인의 결정임을 강조했다. 또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와 간첩법이 모순된다면서도 자신이 간첩법을 위반했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망글로나 판사가 “생일이 다음 주라고 알고 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길 바란다”고 말한 뒤 합의대로 62개월을 선고하자 자신의 변호인단을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앞서 어산지는 미 법무부와 플리바게닝이 이뤄진 뒤 전세제트기(비스타제트 199)를 타고 24일 영국 런던을 출발해 태국 방콕을 경유한 뒤 이날 오전 6시 14분에 사이판에 도착했다. 이날 재판이 어산지의 모국인 호주와 가까운 사이판에서 열린 것은 미 본토 송환을 거부한 어산지의 요청에 의한 것이다.

어산지는 재판 직후인 이날 오후 호주 캔버라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고국으로 향했다. 그는 이날 오후 6시 53분 캔버라에 도착할 예정이다. 앞서 재판이 시작된 직후인 오전 8시 20분쯤 위키리크스는 X에 “어산지가 2시간 58분 뒤 호주행 비행기에 탑승할 것”이라고 어산지의 호주행을 예고했다.

어산지는 미국 육군 정보분석원인 첼시 매닝을 설득해 기밀로 취급되는 외교 전문과 국방 정보를 빼돌려 지난 2010년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해당 문서엔 미군 아파치 헬기가 로이터통신 기자 2명을 비롯한 11명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살해한 사건 등 미군의 전쟁범죄와 관타나모 수용소 인권 침해 등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 검찰은 어산지의 폭로가 언론의 취재 수준을 넘어선 국가안보 위협이라며 기소했다. 어산지는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2019년 4월 체포됐으며 영국 법정에서 미국, 영국 정부와 미국 송환을 둘러싼 공방을 벌여 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판결은 수정헌법 제1조에 위배되며 정부의 군사·외교 정보를 보도할 수 있는 언론의 능력에 종말을 초래했다”면서 “국방·안보 담당 기자들에게 위협적인 메시지”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