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반 25년간이나 미국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법학자 로렌스 로웰은 보스턴의 명문 로웰가(家) 출신이다. 형 퍼시빌 로웰은 천문학자이자 여행가. 조선과 일본 등을 여행한 후 여러 권의 여행기를 썼는데 조선여행기는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인’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퍼시빌 로웰은 1894년 재산을 털어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당시 세계 최대의 천체망원경을 갖춘 로웰천문대를 세워 화성 연구에 주력하는 한편 천왕성 밖의 또다른 행성의 존재를 탐색했다. 여동생 에이미 로웰은 저명한 시인이다.

이같이 가족들이 다양한 학문을 한 영향 때문인지 로렌스 로웰은 하버드대 총장 재직시절 학부 과정을 재설계한다. 학생들이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학문 분야도 필수적으로 이수하게 한 것. 학문의 경계를 허문 로웰의 방침은 지금도 하버드대 교육의 특징으로 계승되고 있다.

로웰은 임기 마지막해인 1933년 사재를 털어 ‘소사이어티 오브 펠로스(SOF·Society of Fellows)’라는 독특한 교육기관을 설립한다. 일종의 연구자 사교모임으로 주니어 펠로가 되면 3년간 연봉을 주면서 일은 시키지 않는다. 유일한 의무는 매달 시니어 펠로와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한담을 나누는 것뿐. 다른 분야를 전공한 학자들간의 격식없는 대화가 지식의 통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로웰의 소신을 실천에 옮긴 기관이다. 형이 찾으려 했던 행성이 형 사망 14년후인 1930년 2월18일 바로 그 로웰천문대에서 24세 시골 출신 아마추어 천문가 크라이드 톰보에 의해 발견된 아이러니도 SOF 창설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짐짓 생각이 든다.

하버드대가 배출한 40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17명이 한가한 잡담이나 나누던 SOF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 크다. 그곳에서 노벨상을 받은 신경생물학자 데이비드 휴벌과 인간의 뇌를 들여다본 윌라드 반 콰인은 논리학의 성과를 철학에 도입한 분석 철학자의 태두가 됐다. 언어학자이면서 주변 학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텍트가 최근 선정하고 있는 ‘세계의 지성 100인’ 북미 1순위 후보로 오른 노엄 촘스키 역시 그곳을 거쳐갔다.

로웰 총장이 일찍이 예견했고 준비했던 대로 현대는 복잡한 엉킴의 시대가 됐고 그동안 인위적으로 분류해 놨던 학문체계의 한 단편만으로는 실타래를 풀 수 없게 됐다. 역시 하버드 SOF 출신인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1988년 ‘Consilience:The Unity of Knowledge’를 통해 학문의 대통합을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학문의 대통합이라는 의미로 윌슨이 선택한 Consilience는 국내에서는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가 통섭(統攝)이라고 번역해 소개했다.

퓨전과 하이브리드가 대세인 현대에서 담장과 경계를 허무는 것은 학문에서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산업에서 예를 들자면 휴대전화와 카메라가 결합된 카메라폰이 통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회분야에서 통합이 특히 필요한 곳은 재난관리가 아닌가 싶다. 지난 정권 말부터 한국 사회는 태안 기름유출, 이천 냉동창고 화재, 남대문 방화사건, 유화공장 화재로 인한 낙동강 페놀 오염 등 일련의 사건을 겪어왔다.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재난 역시 새롭고 복합적인 유형을 보이며 여러 분야 전문가가 함께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 잇단 재난이 남긴 교훈이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당시 행정자치부 민방위재난통제본부를 소방방재청으로 격상시켰지만 법령 체계, 조직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부족으로 방재와 소방이 겉도는 어정쩡한 조직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의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재난안전대책을 사후복구에서 예방관리체계로 전환키로 하고 15개 정부기관에 분산된 100여개의 재난안전 관련 법령을 통합키로 한 방침을 보고했다. 방향은 잘 잡았지만 그 내용 역시 분야별 전문성이 융합된 진정한 통합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동윤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