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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가면 LG전자가 보인다.’

요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전자 본사 화장실에 가면 한글을 찾아볼 수 없다. 소변기나 좌변기 앞엔 온통 영어로 적힌 글귀가 가득차 있다.

연초에 걸려 있던 남용 LG전자 부회장의 신년사는 물론이고, 요즘 걸려 있는 남 부회장의 경영 메시지는 모두 영어로 적혀 있다. 좌변기 앞엔 자주 쓰이는 경영용어들을 뽑아 그 영어 표현을 소개하는 카드가 붙어 있다. 달마다 그 내용이 바뀐다.

이같은 화장실 풍경은 지난해와는 사뭇 달라진 것이다. 남 부회장 취임 원년인 지난해만 해도 주로 남 부회장의 경영철학을 비롯해 낭비제거나 고객 인사이트(통찰) 등 혁신활동에 대한 소개가 한글로 적혀 있었다. LG전자가 올해를 영어 공용화 원년으로 삼으면서 화장실 풍속도도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LG화장실에 걸린 글귀는 회사의 기조를 반영해왔다. LG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은 지난 2005년에는 LG 브랜드에 함축된 기업 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한 ‘LG웨이(WAY)’라는 글귀가 계속 걸려 있었다. 이 글귀엔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정도 경영을 통해 ‘일등 LG’를 달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혁신학교의 주창자인 김쌍수 전 부회장이 LG전자 사령탑을 맡을 당시엔 ‘5%는 불가능해도 30%는 가능하다’라는 김 전 부회장의 평소 혁신 지론이 걸려 있었다.

GS그룹과 분가할 무렵인 2004년에는 ‘남녀 간에 서로 그리워하는 애틋한 정’을 비유하는 ‘낙화유수(落花流水)’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구씨와 허씨 가문 사이의 서로를 배려한 오랜 동업관계를 중의적으로 담은 메시지였다는 것이 LG전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화장실만큼 주목도가 높은 메시지 전달 창구가 없다”며 “그래서 회사 기조가 바뀔 때마다 제일 먼저 화장실에 걸려 있는 글귀가 바뀐다”고 말했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