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9일 오후 충남 태안 만리포에서 지역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해안으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기름을 수거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태안 = 김선규기자

10일 오전 7시 충남 태안군 소원면 소근2리. 김형갑(57) 소근2리 어촌계장은 5㎞에 이르는 ‘기름 갯벌’ 앞에서 천근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지난 이틀간 치우고 치웠는데도 기름 먹은 검은 갯벌은 그대로”라며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방제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며 몸을 갯벌로 이끌었다.

같은 시각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에서는 국현민(48)씨가 방제 작업을 위한 출항 채비를 갖추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국씨는“5명씩 태운 선박 70여척이 흡착포로 기름을 건져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며 “엄청난 기름양 때문에 아무리 작업을 해도 표시조차 안 난다”고 하소연했다.

◆‘기름바다’에 어민·양식업자들은 ‘공황상태’= 7톤 선박을 운영하는 서모(37)씨는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 방파제에서 기름으로 덮인 검은 바다를 보며 연방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서씨는 “매년 겨울이면 ‘간재미’를 하루에 400㎏(시가 240여만원)씩 잡아올렸는데 이번 사고로 전혀 조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장 고기를 못 잡는 것보다 앞으로 몇년간은 태안에서 난 수산물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본춘(48) 모항 어촌계장은 “최고의 청정해역이 하루아침에 기름바다로 변했으니 어민들이 모두 공황상태”라며 “배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은 셈”이라고 말했다.

매년 50여억원어치의 양식 바지락과 미역, 다시마, 톳, 홍합 등을 생산하는 태안군 파도리 역시 기름바다에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김필문(50) 파도리 어촌계장은 “양식장은 모두 절단나고 하나도 건진 게 없다”며 “수십년을 쌓아온 생활 기반이 하루 아침에 엿가락 부서지듯 부서졌으니 기가 막혀 할 말도 없다”며 씁쓸해했다.

30여년간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인배(55·충남 태안군 파도리)씨 역시 “이제 갓 양식에 들어간 전복 3만개가 몽땅 기름덩어리로 변했지만, 7억~8억씩 손해를 입은 이웃 양식업자들도 있어 속상하다는 소리도 못하고 있다”면서 “하루아침에 30년 일자리가 날아갔다”고 망연자실해했다.

◆관광객 발길 끊겨 상인들도 죽을 맛 = 기름 유출과 해양 오염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인근 상인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횟집을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임성일(43)씨는 “보통 주말에 800만원어치를 파는데 지난 토요일에는 58만원에 그쳤다”며 “어항 관리를 위해 다른 곳에서 바다물을 공수해오고 있는데 이렇게 손님이 없으면 이마저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 위치한 M횟집의 김모(46)씨는 “앞으로 3~4년간은 여기 와서 회를 먹고 가는 사람은 이상한 눈길을 받을 것”이라며 “이 지역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여서 아예 동해 쪽으로 옮겨갈까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10년째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미경(여·58·충남 태안군 만리포)씨도 “손님 발길이 뚝 끊겼고 예약이 들어왔던 3팀도 모두 취소됐다”며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라 왔던 손님들도 다들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수 비치캐슬’이라는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전완수(46)씨 역시 “토요일만 해도 5팀이 환불을 요구해 차라리 문을 닫을까 생각 중”이라면서 “당장 돈이 없어 110만원을 주고 있는 청소 아주머니도 어제 해고했다”고 말했다.

◆부족한 방제도구와 2차 오염 우려에 주민들 분통 = 정부 당국의 방제작업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과 의항 등 태안군 일대 8개 포구와 만리포 해수욕장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워낙 오염지역이 넓은 탓에 양동이와 방수복, 흡착포 등이 제때 지원되지 않자 일부 지역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택오(50·충남 태안군 소원면)씨는 “만리포 쪽에 일손과 장비가 집중돼 모항이나 다른 쪽에는 중장비와 흡착포, 양동이도 부족해 발만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화제 사용으로 인한 2차오염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이윤관(48) 모항 어민회장은 “유화제는 기름을 응고시켜 바다에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면서 “기름이 가라앉으면 눈에는 안 보일지 몰라도 바다 속이 완전히 죽게 돼 유화제 사용만은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도 정부가 유화제를 뿌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태안 = 한동철기자 hhand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