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위험수위에 이른 ‘불신풍조’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에 불신풍조를 증폭시킨 사건들은 ‘주홍글씨’처럼 선명하다. 현재 진행형인 신정아·변양균 사건,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논문 조작사건, 국민을 허탈감에 빠트렸던 노무현 정부의 되풀이된 정책실패와 국민의 선택(선거결과)을 전면 부인한 정치권의 이합집산. 문화계와 종교계도 표절시비와 위작논란, 종파간 갈등 등으로 대열에 합류했다.

불신풍조는 그대로 기업의 투자부진과 계층 간의 갈등 등으로 이어져 우리사회의 성장동력을 잠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일보는 창간 16주년을 맞아 낙인처럼 찍혀있는 불신의 계기들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도약의 토대 마련을 위한 신뢰 인프라 재구축의 방안을 점검해본다.


◆ 전통적 불신의 대상 ‘정치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재삼 거론하기 민망하다. 최근 진행되는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국민의 선택과 기대를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다. 정당별 대선 후보 선출을 둘러싼 이전투구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혐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정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연루된 비리사건은 노 대통령의 “깜도 안되는 의혹이 춤춘다”는 말이 무색하게 정권의 도덕성 자체에 치명상을 안기고 있다.

◆ 정부에 대한 불신 부추기는 정부정책 =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기 일쑤인 정부정책은 불신풍조 조장의 대표주자다. 행정수도 이전에서 시작된 이념지향적, 정치공학적 정책은 정부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강남 아파트 값을 겨냥한 부동산 대책은 ‘세금폭탄’이란 신조어까지 나았지만 사실상 실패로 확인되면서 정부정책에 대한 냉소와 반발만 부추겼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내신 반영비율을 두고 벌인 신경전은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대학 재정지원을 중단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하지만 이같은 엄포에 불안에 떤 것은 대학이 아니라 수백만 수험생과 학부모였다.

2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제기되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논란은 60만 국군과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고 있다. 노 대통령은 최근 “NLL은 영토선이 아니다”고 말해 국군의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져버렸다. 국군은 NLL을 지키기 위해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해군과 해전도 벌였고, 전사자까지 나왔다. 우리의 영토라 굳게 믿고 목숨 바쳐 지킨 NLL이 영토선이 아니라는 대통령의 말에 60만 대군은 혼란에 빠졌다.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국군의 믿음뿐 아니라 국론도 보수와 진보 진영을 갈라놓아 서로 간의 불신을 키우는 꼴이 됐다.

◆ 황우석에서 신정아까지, 불신 만연된 ‘학계’= 지난해 전국은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으로 들끓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 과학자였던 그의 이같은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까지 맛보게 했다. 올해 9월 신정아씨가 가짜 박사학위로 교수에 올라 ‘가짜’ 파문은 봇물 터지듯 밀려들었다. 게다가 신씨는 가짜 학위를 이용해 대통령 측근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업으로부터 각종 후원금을 유치하는 등 불법 행위를 일삼아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신씨 이후 김옥랑 단국대 교수가 학력 문제가 거론돼 교수직에서 물러났으며 이창하 전 김천과학대 교수도 거짓 학위 논란에 휘말려 교수직을 내놨다가 최근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정돼 재임용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대 B교수, C대 D교수 등의 학력이 거짓이라거나 유명 대기업의 전도 유망한 임원의 학력이 위조됐다는 소문이 횡횡하면서 ‘불신’ 바이러스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에 앞서 제기된 표절논란은 학계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가 표절의혹으로 낙마한 데 이어 이필상 고려대 총장마저 총장직을 물러나야 했다.

◆ 최고 권력기관 사이 불신 ‘사법부’= 론스타 영장 기각을 둘러싸고 불거진 검찰과 법원 사이 영장 갈등은 올해도 되풀이됐다. 올해 초 이용훈 대법원장이 “국민의 신뢰를 받고자 진심이 말뿐이라고 의심하는 의혹을 지워버리자”고 했고, 정상명 검찰총장도 “자신이 깨끗해야 내가 하는 일이 신뢰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나 검찰 모두 올해는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힘쓰겠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빚어졌던 법·검 갈등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반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법·검 갈등은 변 전 실장과 신씨 사건에서 또다시 불거졌다. 법원이 신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검찰은 “사법 정의 실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대립했다. 국민들은 최고의 두 권력기관이 또다시 대립하며 반목하자 등을 돌렸다.

◆ 곪아 터져버린 ‘문화계’=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작품 2800여점에 대한 위작논란이 제기되면서 결국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문제가 된 작품 대부분이 위작으로 확인되면서 미술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3억1000만원에 팔린 그림은 원본 사진을 베낀 위작이었고, 중학교 2학년이 그린 그림에 덧칠해 박 화백의 화풍처럼 꾸민 그림 등도 있었다. 역사상 최대 위작 사건은 신씨의 가짜 학력 파문이 학계와 문화계를 휩쓸고 간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이어서 문화계가 입은 내상은 더욱 컸다.

장석범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