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명 안팎의 조계종 출가자 중 비구니 스님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비구니는 종단의 양 날개 중 하나지만, 그동안 비구 중심의 불교 현실 때문에 비구니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그러나 조계종 수행의 핵심인 동안거, 하안거 때마다 비구니도 비구 못지않게 많은 수가 참여하며, 치열한 정진을 거쳐 당대의 선지식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 받은 스님도 없지 않다.

전국비구니회에서 엮은 ‘한국 비구니의 수행과 삶’(예문선원)에 따르면 근현대 비구니 선맥은 묘리당 법희(1887~1975)스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공인되어 있다. 법희스님은 최초의 비구니 선원으로 개설된 견성암에서 수선 안거 중 깨달음을 얻었고, 만공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 받아 묘리당이라는 당호와 전법게를 받았다. 법희스님은 그 뒤에도 사불산 윤필암 등 전국 선원에서 계속 수선 안거하였으며, 1996년 이후 10여년간 견성암 비구니총림 원장으로 주석하며 선풍을 드날렸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인가와 법호를 받은 스님으로는 본공 계명(1907~1965)스님이 있다. 또 만성(1897~1975)스님도 45세 때인 1941년 만공스님과의 법거량으로 오도의 경계를 드러내고 법을 인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안거 때마다 대중을 세차게 용맹정진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유명했던 담연 선경(1904~1996)스님도 35세때인 1938년 깨달음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비구니로서 엄격한 청규를 지킨 스님으로는 일엽(1896~1971)스님과 원허 인홍스님이 잘 알려져 있다. ‘청춘을 불사르고’란 책으로도 유명한 일엽스님은 38세 때 견성암에 안착, 홀연히 한 소식을 접한 뒤 만공스님의 유훈을 평생 지키며 25년 동안 산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인홍스님도 성철스님이 내린 12가지 청규를 지키며 한 치의 빈틈없이 수행에 철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홍스님의 일대기 ‘길 찾아 길 떠나다’에는 인홍스님 이외에도 처절하게 수행했던 혜춘(1919~1998·전 전국비구니회 회장)스님의 수행기가 눈길을 끈다. 변호사 집안의 딸로 자라 시아버지가 도지사였던 가문으로 출가했던 혜춘스님은 성철스님에 의해 인홍스님이 수행하던 성주사로 보내진 뒤, 삭발도, 방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받지 못한 채 법당 처마 밑에 거적을 깔고 앉아 화두를 들어야 했다. 부엌에서 꽁보리 밥 한 덩이에 소금에 절인 김치 한 조각을 얻어 먹으며 입선도, 예불도 모두 거적에서 해결하던 그는 두달이 지난 뒤에야 삭발을 허락받고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뒤 하안거를 마친 혜춘스님은 법전(현 조계종 종정)스님, 인홍스님 등과 함께 성철스님이 주석 중인 경남 통영의 안정사 천제굴로 법문을 들으러 갔다가 성철스님이 마구 내리치는 주장자에 법전스님과 함께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 맞고, 바랑까지 불태워졌다고 한다. 대중들이 성철스님의 “일러보라”는 말에 한마디도 못한 채 침묵만 지킨 결과였다. 그로부터 40년 뒤인 1993년 성철스님이 열반에 들었을 때, 혜춘스님은 해인사 법당 처마 밑에 거적을 깔고 한없이 앉아 있는 것으로 스승을 추모,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 비구니 승가가 세계 최대의 비구니 승단이 된 것은 이처럼 치열한 구도와 수행으로 척박한 시대를 헤쳐온 선배 비구니들이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