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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출범에서 연장협상까지.’ 한국경제의 일대 전환을 가져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이 1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지난 2일 타결됐다.

세계최대 경제대국과의 이번 협상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논란의 회오리를 몰고 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막판까지 밀고 당기는 피말리는 공방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미 FTA협상의 출범에서 타결에 이르는 주요 대목을 돌이켜 본다.

◆‘007작전’ 방불케 했던 한·미 FTA협상의 전격출범 = 2006년 1월18일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 TV연설에서 “우리경제의 미래를 위해 미국과 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무렵 관가에선 2005년 11월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로 FTA추진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당시 재정경제부 정례브리핑 때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지만 한덕수 당시 부총리겸 재경부 장관은 “장래의 이야기”라며 부인했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 있은지 1주일뒤인 1월26일 한 부총리는 스크린 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 일수규정)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스크린 쿼터 축소의 파장은 간단치 않았다. 영화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고 광화문에선 영화인들의 ‘1인 릴레이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분위기가 한층 어수선해졌다.

1주일 뒤인 2월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건물에서 열린 외교통상부 주최 공청회는 농민단체 회원 등의 반발로 중단됐다. 하지만 정부는 같은 날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협상개시를 의결했고 3일(미국시간 2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 의회에서 협상출범을 선언하는 등 예정된 일정을 강행했다.

◆대통령 전세기에서 내려진 ‘결단’ = 2004년 7월 44세의 나이로 취임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FTA는 한국경제에서 제2의 고속도로’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김 본부장은 취임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멕시코, 캐나다 등과의 협상을 개시하며 미국쪽에 줄곧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초기 3년간에 걸쳐 추진됐던 한·미 투자보장협정(BIT)협상이 스크린 쿼터 문제로 깨진 뒤로 한국에 신뢰감을 잃은 미국의 반응은 썰렁했다. 이 때 미국이 던져놓은 카드가 ▲스크린쿼터 감축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완화 ▲의약품 가격 재조정 금지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이다. 한국이 이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면 협상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김 본부장은 고심했지만 ‘정면돌파’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2005년 9월9일 중남미행 대통령 전세기안에서 김 본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노 대통령은 김 본부장의 설명을 장시간 경청한 뒤 결단을 내렸다. “당장 진행합시다.” 이후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정부는 2005년 10월30일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절차를 접었고 11월6일에는 자동차 배출가스 강화기준의 수입자 적용유예 조치를 내렸다. 이듬해 1월13일엔 미국과 쇠고기 수입재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가시밭길’의 협상여정 = 예상대로 협상과정은 험난했다. ‘통상협상은 국내와의 협상이 절반’이라는 말처럼 국내여론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반대론자들은 협상개시 한달반쯤 뒤인 3월28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를 발족, 반대운동의 조직화에 나섰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과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등 노 대통령의 참모들까지 반대세력에 합세했다.

협상단은 지난해 6월5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서울→시애틀→제주도→몬태나 등 양국을 번갈아 오가며 8차례 협상을 하고 산적한 쟁점들을 하나하나씩 좁혀 나갔다. 그러나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에서 미국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가 적정화 방안’을 걸어 의약품 작업반 회의를 거부했고 12월 미국의 쇠고기 산지 몬태나에서 열린 5차 협상에선 무역구제 개선카드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우리 협상단이 자동차와 의약품 협상을 전격 중단시키는 등 공방이 끝없이 이어졌다.

국내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승리를 위해 막판에 협상결렬 선언을 할 것”이라는 ‘꽃놀이패’ 괴담이 나돌았고 협상전략을 담은 문서가 국회에서 유출되는 소동도 빚어졌다.

◆피말렸던 ‘끝장협상’ 48시간 연장 드라마 = 지난 3월26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끝장협상’은 한뼘의 땅이라도 더 뺏으려는 ‘백병전’을 방불케했다. 8차협상(3월8~12일)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던 양국은 이번에도 자동차, 쇠고기, 섬유 등 핵심쟁점을 놓고 맞섰다. 미국은 협상초반 쇠고기 수입재개를 각서로 보장하란 요구를 내놓으며 우리측을 압박했다.

협상 나흘째인 3월29일 밤 11시. 김현종 본부장은 캐런 바티아 미측 협상대표가 내놓은 자동차 관세양허안을 보고 절망했다. 김종훈 수석대표의 표현을 빌면 ‘뚜껑이 열릴 정도’로 엉망인 개방안이었다. 김 본부장은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숙소로 돌아와 버렸다. 420여일 협상기간의 최대고비였다. 김 본부장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약 5시간 뒤인 3월30일 새벽 4시 미국 협상단에서 전화가 왔다. 자동차 분야에서 조금 진전된 카드를 내놨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간의 전화통화 이후 부시 대통령이 ‘먼저 유연하게 협상하라’고 미국 협상단에 지침을 내렸던 것이다. 협상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지만 애초부터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로 꼽혔던 농업분야도 만만치 않았다. 3월31일 오전 4시30분쯤. 배종하 농업분과장은 미국이 탐내는 쇠고기 시장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열겠다는 관세안을 던진 뒤 “이제 그냥 자자”며 자리를 떠났다. 양국이 최종 통상장관 회담시한으로 정한 3월31일 오전 7시를 2시간 30분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황한 미국은 시간연장을 제의, 협상이 48시간 연장됐다.

승기를 잡은 한국협상단은 다음부터 버티기로 일관했다. 최종협상에서 내내 쌀개방을 요구해온 미국은 막판에 쌀을 포기했고 자동차 관세도 즉시 폐지하기로 양보하면서 핵심쟁점이 풀려 나갔다. 14개월에 걸친 협상은 TPA시한을 불과 20분 앞둔 2일 낮 12시40분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의동기자 phil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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