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측에 “추가 핵실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북핵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20일 김 위원장이 하루전 평양을 방문한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추가 핵실험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탕 위원이 이날 라이스 장관과의 회담에서 “다행히도 평양 방문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도 김 위원장의 이같은 입장표명을 염두에 둔 발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은 6자회담에 기꺼이 복귀하겠지만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대북 금융제재 해제는 어렵다면서 북한에 “조건없이 즉각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리 부장과 유엔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라이스 장관은 북한의 핵실험을 ‘심각한 도발이자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면서 “불법적인 화물과 위험한 물질의 교역이나 운송을 확실히 차단할 수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의 전면적 이행문제를 협의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대북 제재 일환으로 북한 접경지역을 철저히 통제할 것을 약속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금수조치 결의 이후 중국에 대해 신뢰감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리 부장은 “중국은 유엔 회원국이자 상임이사국으로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면서 유엔 대북 결의 의무사항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모든 관련국들이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과 리 부장은 6자회담의 조속한 회복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하는 한편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라고 북한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발언에서는 미묘한 입장 차이가 감지되기도 했다. 리 부장은 양국이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위기상황을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전한 데 비해, 라이스 장관은 유엔 결의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바라보는 양국의 입장에 틈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향후 대북 제재조치의 이행과정에서 갈등으로 발전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리 부장과의 회담에 이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면담한 뒤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전날 밤 돌아온 탕자쉬안 국무위원과 회담하는 등 중국 지도부와 만나 북핵문제를 논의했다. 라이스 장관은 앞서 19일 서울에서 중국 방문길에 오르기 전 KBS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북 특사 파견 여부를 묻는 질문에 “미국은 북한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 없다”며 북·미 직접 대화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베이징 = 허민특파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