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금 ‘공포와 동거’하고 있다. 사방팔방이 핵무장 국가로 둘러싸인 ‘핵해(核海)의 고도(孤島)’다. 한국을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한결같이 핵 보유국이거나 핵을 보유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나라들이다.

북한을 포함해 전세계 핵 보유국 8개국 가운데 인도와 파키스탄까지 5개국이 한국 주변에 포진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가뜩이나 핵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핵 경쟁을 재촉하고 핵 개발 도미노를 불러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의 2차 핵실험 박두설은 이미 일본 내 핵무장 논의 공론화를 몰고 왔다. 최근 대만은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을 겨냥해 최대 사거리 1000㎞ 특수 미사일을 배치했다.

◆중국이 두려워하는 것, 일본의 핵무장 = 중국은 줄곧 동아시아의 핵 도미노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의 한 정치학 교수는 “북한이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라서면 한국과 일본에서도 가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 두 국가는 핵무기를 보유하는 데 불과 몇 개월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특히 일본의 핵무장을 가장 경계한다. 일본의 핵개발 잠재력은 실로 가공할 정도다. 일본은 세계 3위의 원자력 대국이다. 가동하고 있는 52기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연간 1000톤의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한 결과 이미 핵무기 원료가 될 수 있는 플루토늄을 54톤이나 보유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위원회는 2004년 11월 모든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의무화하는 ‘신(新) 장기계획’을 의결했다.

물론 일본 정부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세계 유일의 피폭국이라는 점과 비핵 3원칙에 따라 일절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비핵3원칙(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며, 핵무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은 19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가 중의회 연설에서 처음 제창했고, 중의원은 1971년 11월 비핵3원칙 준수 결의를 통과시켰다. 사토는 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이런 상황을 뒤집고 있다. 일본은 마치 자국이 최대 위험국인 것처럼 반응하면서 핵무장론을 공론화하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총리가 지난 9월5일 ‘핵 문제 연구 필요’ 발언으로 불을 지핀 데 이어 지난 15일엔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자민당 정조회장이, 18일엔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이 바통을 이어갔다.

19일에는 급기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로까지 핵 논란이 이어졌다. 아베 총리는 이날 “자민당 내에서 정식으로 논의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의원 개인의 발언까지 억제할 수는 없다. 일본은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현지의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의 핵무장 공론화 움직임이 ▲안보 불안을 극대화시켜 재무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미래에 미국으로부터의 안보 자립을 겨냥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물론 아베 정권은 현재의 국제질서, 피폭국가로서의 일본 내 반핵 분위기 등 때문에 당장에는 핵무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일본 내 극우파 정치인들이 핵무장론의 시기로 미국의 ‘안보우산 졸업’ 시점을 들어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핵무장 공론화는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통해 아시아에서 미국이 해온 역할을 일본이 대신하고 궁극적으로는 제2의 대동아공영권을 꿈꾸는 것이 일본의 속내일지 모른다.

중국의 걱정은 여기에 있다. 북한의 핵폭발 실험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실은 미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중국이었다. 중국은‘제멋대로’라는 전례 없는 강경한 표현을 동원해 북의 핵실험을 강력 비난했다.

◆북한에서 세계로 번져가는 핵무장론 = 미국이 일본의 핵무기 개발을 눈감아 준다면 일본의 핵무장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그럴 경우 동북아는 자칫 세계적인 화약고가 되고 현재의 휴화산은 다시 활화산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일본의 핵무장이 한편으로는 한국의 핵 개발 의욕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한 중국의 리액션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대만의 핵개발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몰고 올 게 뻔하다.

대만은 지난 1980년 이미 핵무기 개발 직전단계인 고폭(高爆)실험을 마쳤다. 2003년 핵무기개발금지를 기본방침으로 규정한 비핵추진법을 마련하고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의 계속 제공을 약속받긴 했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대만은 장제스(蔣介石) 총통 시절 국방부 직속 기관으로 설립한 중산(中山)과학원을 통해 두 차례나 핵개발에 나섰던 전력이 있고,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1995년 방미할 당시 중국의 압력이 가중되자 핵개발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한 일도 있다.

대만은 최근 중산과학연구원이 개발한 사거리 600∼1000㎞의 ‘슝펑(雄風)2E’형 순항미사일을 펑후다오(澎湖島) 북방의 둥인다오(東引島)에 배치했다. 대만은 또 푸젠(福建)성 해안의 미사일과 대만해협의 중국 잠수함을 방어하기 위해 이지스함을 살 계획도 갖고 있다. 이 같은 대만의 움직임은 핵 강국 중국을 더욱 자극시켜 핵전력의 현대화를 촉진할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최근 기사에 따르면 “북한을 포함해 핵보유국이 9개국으로 늘어났고 핵물질이나 핵기술을 갖고 있는 잠재 핵보유국도 40여개국에 이른다”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핵 개발 도미노가 전세계로 번져나갈 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통한 북한 핵 포기 노력이 실패할 경우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갈등은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비핵3원칙 채택과 미국의 핵 등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에 따라 한국도 이미 15년 전인 1991년 ‘한반도비핵화선언’을 했다. 이 선언은 일본의 비핵3원칙보다도 훨씬 더 나가 재처리시설과 핵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것까지 포함했다.

하지만 한국도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과거에 핵농축 사실이 드러나 한바탕 소란을 겪었던 일도 있다. 세계적인 군사정책 권위지인 포린 폴리시는 ‘한국의 경우 그동안 북핵 해결방안을 둘러싼 한·미 간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자주국방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온 만큼 핵개발에 나설 개연성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동아시아 주변국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핵전역화한다는 말이 된다.

베이징 = 허민특파원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