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서울 은평구 은평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한국경제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라는 강연을 통해 경제 현안에 대한 평소 소신을 작심한 듯 거침없이 쏟아냈다. 다음은 주요 발언 내용.

◈한국경제 현상황에 대한 평가=한국경제는 저임금, 보호주의, 정부지원 등 3가지의 엔진을 가지고 지난 40여년간 고도성장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고임금과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 보호주의의 종언으로 인해 3가지 엔진이 모두 멈추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겪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부채구조조정을 했다. 쉽게 말해 기업들이 부채를 줄이고 한국은행이 저금리정책을 펴면서 기업의 이자부담이 줄어들었다. 그것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성장의 ‘엔진’이었다. 그런데 이제 부채는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고, 한은도 더 이상 저금리정책을 계속할 수 없다. 새로운 위기가 닥친 것이다.

◈양극화 원인=새로운 위기에서 살아남는 길은 무엇이냐.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에따라 우리나라 경제에는 현재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 경쟁력이 우위에 있는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기술력 없고 사람은 많이 써야 하는 열위(劣位) 산업인 중소기업·자영업·농업 등은 퇴출되거나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자영업·농업이야 말로 민생을 떠안고 있는 부문이며, 고용을 떠안고 있는 부문이다. 따라서 거시경제지표는 좋지만 민생경기, 체감경기는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극화 해소방안=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20년, 30년을 내다볼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현상황은 기업호황, 가계불황이다. 기업은 사상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는데 가계의 소득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투자를 안하다 보니까 기업의 투자확대가 개인소득 증가로 이어지고 다시 기업소득 증가로 연결되는 선순환의 고리가 끊어졌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제도나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분리원칙은 폐지되거나 완화돼야 한다. 또 새만금사업을 십몇년이 되도록 결정하지 못하는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을 개선해야 한다. 노동시장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유무역협정(FTA)를 통해 기업이 100의 이익은 보는 반면, 농민은 30의 손해를 본다면 기업이 농민들의 피해를 보상해줘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도 문을 닫을 경우 실업수당을 제공하거나 북한에 공단을 많이 만들어 중소기업의 살 길을 열어주는 정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주택문제=서울의 주택문제는 양적인 부족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부족 문제다. 서울시의 주택보급률이 2004년 현재 89%인데, 다가구주택까지 포함하면 106%에 달한다. 따라서 서울의 주택문제는 우량지역, 강남 3개 지역에 국한된 문제지 보편적인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모든 주택 수요가 지방에서 서울로, 강북에서 강남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 서울의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단위, 공영 재개발 등을 통해 강북에 초우량 주택을 많이 공급해 강북을 강남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리=조해동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