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삼성테크윈의 박기태 파워시스템 기획팀 대리는 회사 업무차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전시회 경쟁업체의 제품 사진을 찍어 빨리 전송하라는 것. 카메라를 지참하지 않았던 박 대리는 디지털 카메라를 사기 위해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전자제품상가 한 카메라 전문점을 찾았다. 그 점포의 점원이 대뜸 삼성테크윈의 ‘샵(#)1 MP3’를 권했다.

박 대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1년전 방문했을 때와 사정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초만 해도 삼성테크윈 디지털 카메라는 캐논, 소니, 니콘 등 일본 제품에 밀려 진열대 후미진 곳에 놓여 있었다. 점원도 당연히 일본 제품을 권했었다.

최근에 디지털 카메라 사업이 잘 된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사업부 성격이 워낙 달라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대한 박 대리의 이해 수준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박 대리는 호기심이 생겼다. “삼성테크윈 케녹스 제품이 실제로 잘 팔리냐”“일본 제품과 비교할 때 어떠냐” 등 시장조사하듯이 꼬치꼬치 물었다. 점원의 대답인즉 삼성 디지털 카메라가 최근 일본 제품에 버금갈 정도로 성능과 디자인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이다. 특히 ‘#1’과 #1MP3의 경우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아 젊은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점원은 설명했다.

삼성테크윈의 카메라 사업은 말 그대로 ‘미운 오리’ 신세였다. 대부분의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잘 나갈 때도 삼성테크윈은 그렇지 못했고 카메라 사업은 늘 집중 성토의 대상이었다.

삼성테크윈이 카메라와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지난 1979년. 당시에는 필름 카메라만 있었을 뿐 디지털 카메라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였다. 일본 미놀타 카메라를 조립해 파는 수준이었다. 시장도 크지 않았고 마진 역시 박해 말 그대로 ‘돈벌이’가 안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지난 1995년 독일 카메라업체 롤라이를 인수하면서 전문 광학기기 업체 도약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카메라 사업에 대한 투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카메라 사업은 명맥만 유지한 정도였다.

이때 외부로부터 기회가 찾아왔다. 1999년대말 전자·정보기술(IT)산업 전체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카메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디지털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빛을 필름에 저장하는 필름 카메라와 달리 0과 1의 디지털 신호로 구성된 데이터로 전환, 내부 전자장치에 기록한다.

전통적인 광학업체 중에서 캐논, 니콘 등은 이러한 흐름을 잘 읽고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당시 세계 최고의 전자업체인 소니는 자사가 확보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 순식간에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강자로 떠오른다. 미국의 필름업체 코닥 역시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든다.

그러나 나머지 광학·필름업체들은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고 시장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2005년 독일의 필름업체 아그파의 파산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테크윈은 이러한 산업의 격변기에서 한발 늦게 뛰어들었다. 디지털에 강한 삼성그룹 계열사답게 흐름은 제대로 읽고 있었으나 투자여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중구 삼성테크윈 사장은 “일본의 경쟁업체에 비해 2년 정도 디지털 카메라 사업에 늦게 뛰어들어 격차가 생겼다”면서 “그러나 같은 계열사인 삼성전자와의 협업과 자체 축적 기술을 통해 격차를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급반전된 것은 지난해초. ‘V10’ ’U-CA5’ 등 젊은층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들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삼성테크윈은 순식간에 국내 판매 1위로 뛰어올랐다. 일제 카메라는 제 아무리 삼성이라도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국내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중무장한 삼성테크윈은 일본 경쟁업체와의 격차를 줄여갔고 지금은 거의 대등한 수준에서 자웅을 겨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한 게 두께 17.3㎜ 슬림형 디지털 카메라 ‘#1’. 단순하고 산뜻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 넓은 액정화면 등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어 준전문가용 디지털 카메라 ‘프로815’, ‘#1’에 MP3플레이어 기능을 덧붙인 ‘#1MP3’, 디지털 카메라에 멀티미디어 재생 기능을 합친 ‘#11 PMP’ 등 히트작들을 연달아 내놨다.

삼성테크윈 광디지털 마케팅팀 이성기 차장은 “#1의 기대 이상의 성공은 디지털 카메라 사업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며 “프로 815 역시 일본 경쟁업체에 앞서 신규 시장을 개척했다는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최근 일본의 유서깊은 광학업체 펜탁스와 제휴, 수익성 높은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 시장에 진출했다.

일반 디지털 카메라에서 준전문가용 카메라를 거쳐 DSLR 카메라까지 카메라의 전 라인업을 갖추게 된 것이다.

#1 시리즈는 수출에서도 선봉장 노릇을 했다. 지난 6월 출시 이후 8개월만에 누적 수출대수 55만대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중국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선 2위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동남아, 남미, 동구권 등 신흥시장 위주로 공략하고 있는 상태다. 현재 세계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캐논, 소니 등을 양대 축으로 해 니콘, 코닥, 올림푸스, 삼성테크윈 등이 중위권을 형성하고 있다. 삼성테크윈은 2007년까지 이러한 판도를 캐논, 소니, 삼성테크윈의 3강 구도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유회경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