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때때로 강력하게 추억을 환기하시키거나, 식탁에 마주앉은 사람과의 사랑과 유대를 확인시킨다. 어려서 먹던 음식은 성인이 된 뒤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식구끼리 둥글게 모여앉은 밥상은 처연하면서도 따뜻한 가족간의 유대를 경험케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이 바탕이 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손수 차려내는 모든 음식은 무릇 사랑이 ‘주재료’인 셈이다.

한해를 보내고 새로 한 해를 맞는 즈음. 가족, 혹은 연인을 위한 식탁을 차려보자. 숙련된 요리사의 식탁이 아니라, 사랑을 주재료로 차려내는 음식이니 3개월 코스의 요리학원까지 다닐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자면 호텔이나 요리학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쿠킹클래스’가 제격이다. 쿠킹클래스란 초단기 요리강습 프로그램. 대개 음식 두어가지를 하루 2시간 안팎의 시간에 가르쳐준다.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초보자들을 위해 알기쉽게 조리법을 시연해주고, 참가자들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물론 만들어진 음식을 함께 나눠먹는 순서도 마련돼있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동의 이탈리아요리 전문학원 일 꾸오꼬. 이곳 3층의 조리실습실에서 10여명의 수강생들이 이탈리아 조리책을 앞에놓고 각기 한 가지씩의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탈리아 쌀요리인 리조또를 정성껏 만들어내는 한 남자 수강생의 코 끝에는 송알송알 땀이 맺혀있다. 실습실에는 매캐하면서 입맛을 돋구는 마늘향과 올리브 오일 내음과 달그락거리며 접시부딪치는 소리와 탁탁탁 규칙적으로 끊어내는 도마질 소리, 그리고 유쾌한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곧 넓적한 녹색 면발의 파스타와 새우를 넣은 스파게티, 그리고 화려한 모양의 ‘카프레제’까지…, 조리실 앞의 식탁에는 이들이 만들어낸 음식접시들이 한데 모였다.

열 여덟살 소녀부터 40대 가장까지 이들은 이탈리아 전문 조리사의 전문과정을 밟고있는 수강생들이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은 기교보다 정성이 훨씬 돋보였다. 아직까지 이들에게 요리란 손님앞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조리가 끝난 뒤 함께 나눠먹는 음식인 탓이다. 테이블을 돌던 강사가 아직 서툰 수강생들의 음식을 놓고 품평을 하면서 타박하기도 했지만, 누구의 음식이든 가릴 것 없이 둘러서서 접시를 싹 비워냈다.

일 꾸오꼬 심재호 원장은 “음식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꼭 신부수업이나 전문조리사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요리학원을 찾는 일반인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요즘 들어서는 일반인들이 쉽게 요리에 접할 수 있는 쿠킹클래스가 인기있다”고 말했다. 심 원장은 또 “쿠킹클래스를 통해 요리를 접한 일반인들이 ‘음식을 잘 만들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전문가 과정을 밟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호기심에 이곳을 찾았다가 파스타를 만드는 준전문가 과정을 밟고있는 윤수진(여·37)씨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낸다는 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라며 “취업을 위한 것도, 그렇다고 요리솜씨를 뽐내려는 것도 아니지만 정성껏 식탁을 채워가는 과정이 말할 수 없이 즐겁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도 “배운 요리로 상을 차려줄 때 가족들에게 마음이 다가가는 것같아 흐뭇하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채 이루지 못했던 꿈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기대를 함께 나누는 연말연시다. 이런때 상대방을 위해 정성껏 식탁을 차려내보자. 풍성한 외식도 좋지만, 좀 초라하더라도 따뜻한 사랑을 담은 음식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 한해를 살아내는 힘이 돼줄 것이다.

박경일기자 parking@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