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별이 지다’라는 말이 여느 때보다 많이 들리는 요즘이지만 요즘처럼 이 말이 실감날 때가 없었다. 고전 역사물을 재해석해 자신만의 해학과 익살을 선보였던 만화가 고우영의 타계는 우리 만화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만의 남다른 재치가 살아있는 수많은 작품 가운데 ‘가루지기전’(자음과 모음)은 최고다.

남도의 섹스머신 변강쇠 그리고 함흥의 팜파탈 옹녀가 만나 질펀한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이 만화는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한 익살과 재미를 보여준 고전 성인만화다. 일곱 살 때 동네 소년들이 쳐다보다가 우물에 빠져 죽은 것을 시작으로 옹녀는 주위의 모든 남자를 죽게 하는 ‘살’(煞)을 타고난 여자다. 그 탓에 혼례 다음 날 시체 치우는 데 지쳐버린 과부 옹녀를 거쳐간 수많은 남자들은 심장마비, 복상사, 뇌진탕, 매독 등 병명도 다양하게 죽어나갔다.

비슷한 인생 행로를 지나온 남도의 쾌남 변강쇠. 마을에서 쫓겨나 정처없이 떠돌던 옹녀는 청석골 근처에서 하필 북쪽으로 도망치던 변강쇠와 우연히 만나 눈을 맞추고는 그 날로 배도 맞춰(?) 버린다. 샅이 꽉 차 씨름 샅바를 맬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남근의 소유자 변강쇠와 그 부위가 세로가 아닌 가로로 돼 있어 가루지기가 됐고 쌀 너 말을 넣고도 남을 만큼 속이 깊던 옹녀의 파란만장한 생활이 구수한 입담으로 펼쳐진다.

고우영만의 해학이 남다르지만 원전해석에도 충실했던 작품. 북녘의 구수한 사투리가 옹녀의 말투에 녹아있어 매력을 더한다. 옹녀와 변강쇠가 처음 만나는 장면의 교차편집 형태도 참 재미있다. 영화처럼 실감나던 장면이 많았던 이 작품은 88년에 고우영이 직접 메가폰을 잡아 영화화되기도 했다. ‘대장암 부위를 40㎝나 잘라냈는데 어느 샌가 (암세포가) 간으로 탈출했더라’고 자신의 병까지 재치 있게 표현했던 고우영이었다.

고우영을 빼고 한국만화의 역사를 쓸 수 없다. 그의 큰 그늘이 우리 모두의 정서 속에 길게 드리워 있어, 그의 타계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할 것 같다.

만화스토리작가 klavend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