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지출이 부질없다는 소리를 하면 자식 키우는 선배들로부터 어김없이 이런 답변이 날아온다. “너도 한 번 애 키워 봐” 이것이 변명인지 저주인지 생각하다가 대답 대신 내가 아는 어떤 만화가 부부의 이야기를 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부부는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여행을 너무 좋아해 365일 동안 신혼여행을 다닌 부부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영어며 한자 과외를 시키기는커녕 한글도 못 뗀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간다. 만화가 이우일과 한 집에 사는 만화가 선현경씨의 ‘가족 관찰기’(뜨인돌)를 보면 이 가족의 사는 모습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걱정, 다툼, 잔소리로 알콩달콩 사는 모양은 여느 가정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여행을 많이 다닌 이 가족에게는 외국 친구와 만나고, 외국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도 잦다. 제사를 안 지내는 시댁 덕에, 명절 스트레스는 남편 몫이다. 구속받는 게 질색인 이 부부는 휴대전화도 없고 TV에선 공중파 방송도 안나온다. 대신 이 가족은 온갖 장난감과 신기한 외국 풍물과 만화와 기념품 속에서 산다.

재미있는 영화, 좋은 음악에 사족을 못 쓰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아이도 그것을 보고 들으면서 자란다. 출근하는 아빠, 살림하는 엄마 대신 온 가족이 함께 놀다가 자다가 음악 듣고 쇼핑하고 장난감 사는 일상 탓에 집은 늘 시끄럽고 요란하다.

부모가 만화가라 그림은 좋아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가 틀에 박힌 공부를 좋아할 리도, 잘 할리도 없다. 유치원 담임이 딸아이의 실력을 문제 삼고 은근히 (사교육을) 채근하면 “부모가 어릴 때 공부 못해서 얘도 그런다”고 대수롭지 않아 한다. 게으르고 철이 없어서 이렇게 산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가만 보니, 놀고만 있는 아이한테 간혹 번득이는 감성이 보인다.

이 가족의 사는 모양을 보면 아마 이들의 행복이 부러울 것이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다른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잘 알고 실천하기 때문에.

만화스토리작가 klavend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