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은 자신의 절실한 심정을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나의 소원’은 지금 읽어도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의 소원은 과거의 교훈일뿐 아니라 현재 진행의 과정이자 미래의 조건이기도 하다. 1주일 전인 지난 11월23일. 이날은 백범이 중국에서 돌아온 지 만 59년째의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한 날이기도 하다.

이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날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기는커녕 아예 무시하려는 경향마저 없지 않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선언은 말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범과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문화재 하나 제대로 간수 못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백범은 27년간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임시정부와 함께 해방조국에 돌아왔지만 거처할 곳도 없었다. 그래서 그가 머물기 시작한 곳이 경교장(京橋莊·서울 종로구 평동 108번지)이다. 금광을 하던 거부 최창학(崔昌學)이 이 저택을 백범에게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축 당시 이 집은 대지 1600평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양옥이었다.

백범은 이곳에서 1945년 11월23일부터 1949년 6월26일 서거하기까지 3년7개월동안 머물렀다. 그의 행적이 남아있는 국내 유일한 장소다. 그는 환국이후 경교장에서 국무회의를 갖고 비상국민회의를 소집하는 등 각종 활동을 벌였다. 경교장은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관저 역할을 한 것이다. 백범은 이곳에서 남북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암살범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졌다.

그 경교장의 60년 역사는 기막히다 못해 참담하다. 백범이 암살된 후 경교장은 미군주둔지와 베트남 대사관 등으로 사용됐다. 현재는 삼성측에 매입돼 강북삼성병원 부속건물로 쓰이고 있다. 한때 철거의 운명에 놓이기도 했다. 경교장 복원운동단체 등의 주도로 2001년 겨우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으나 내부는 병원의 일부로 개조돼 껍데기만 남았다. 더구나 증축된 고층의 병원건물과 구름다리 등에 묻혀 문화재로서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됐다. 문화재 주변에는 이같은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다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내년이면 임시정부 환국 60년을 맞는데도 이 모양이다. 경교장의 운명이야말로 이 땅의 야만적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경교장 복원 및 국보지정 운동을 펴온 백범사상 실천운동연합의 김인수대표는 “중국에서도 상하이(上海) 등 여러 곳의 임정청사가 복원되고 있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실현이 요원하다”고 호소한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과 그 사회의 존재 이유중 하나다.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규정,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중인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그 역사를 과거와 미래의 관계로 더욱 발전시킨다.

홉스봄은 저서 ‘역사론’에서 “과거와 미래를 나누는 경계선이 없다는 이유만으로도 역사는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금 막 이야기한 것은 벌써 과거에 속한다. 말하려는 것은 미래에 속한다. 과거와 미래 어딘가에 ‘현재’라고 부를 수 있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점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정리는 그래서 의미있는 일이다. 과거는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교장은 복원되어야 한다.

[[김광원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