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그 남자 그 여자’에 대한 리뷰를 쓰고 나서 한 고등학생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주인공들이 성장통을 앓으며 조금씩 어른이 되어간다’는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은 이미 하나의 독립된 개체이며 완성된 자아를 갖고 있다는 것이 항의의 요지였다. 실제로 어른들의 철없는 행동이 이 사회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느냐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항변이 덧붙여졌다.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역시 이미 세상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저것 우리를 가르치려는 선생님과 어른들의 행동은 한없이 우스웠다.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선망과 동경, 사람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지만 노력한다고 모든것이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유시진의 만화 ‘쿨핫’(코믹스투데이에서 6권까지 발행·사진)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쿨핫’은 저마다의 세계와 독특한 개성을 가진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외모를 지닌 주인공 루다. 보이시한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지만 그런것에 우쭐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루다의 눈에 띄게 된 같은 반의 ‘얼음공주’ 동경은 뛰어난 외모와 차가운 태도로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지만 그런 것에 상처받지 않는, 강한 자아를 지닌 아이다.

그 외 학교 내의 유명서클인 ‘가디록’의 회원들을 중심으로 각 인물의 사연과 경험들이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화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똑같은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다르게 해석되는 구성이 흥미롭다. 주인공들은 보통 순정만화의 등장인물들처럼 마냥 철이 없거나 사랑에만 열을 올리는 것이 아닌, 저마다의 세계속에서 주변과 소통하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배워가는 성숙한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일찍 철든 아이들의 고뇌를 다루는’ 재미없는 만화는 아니다. ‘마니’, ‘신명기’, ‘폐쇄자’ 등 독특한 색채의 팬터지 작품을 주로 그려왔던 작가는 평범하고 단순해지기 쉬운 학원물에 생각할 거리를 담아 매력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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