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가 출범하기 전에는 성인농구가 금융팀과 실업팀의 양대 산맥으로 나뉘었다. 당시 금융팀의 선수들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승진시험인 책임자 임용고시를 일반직원들과 같이 통과해야만 은퇴한 뒤 책임자 생활을 하며 은행에 다닐 수 있기에 주경야독했었다.

필자가 89년 시험을 치를 때의 일이다. 당시 기업은행엔 김동광 감독, 안종관 코치, 그리고 선수로는 이민현, 윤재근, 고(故)김영선, 최철권, 정재섭, 고 안춘승, 윤창호, 이민형 등이 있었다. 시험은 통상 5월에 있어 실업대회인 코리안리그와 중복됐다. 그런데 경기와 시험이 같은 날 겹쳐 농구협회에 협조공문을 보내서 경기일정을 변경하고 시험을 치렀으며, 대회와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괌 원정 일정이 잡혀있었다.

우리는 합격자 발표도 못 본 채 괌으로 떠났다. 2~3일 지나면서 시험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 드디어 서울로부터 긴급소식이 날아왔다. 시험결과였다. 합격자도 있고 불합격자도 있게 마련이다. 합격자들은 그날 저녁 한방에 모여 불합격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축하주를 마셨다. 불합격자는 다른 방에서 선·후배들의 위로주를 받으며 낙방의 설움을 달랬고, 양쪽 방에서 술이 얼큰해지자 자연스럽게 합방됐다. 우리는 “시험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를 외치며 밤새 낙방자들을 달래며 술을 마셨다.

다음날 경기를 하는데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그날 게임은 식스맨 후배들의 몫이 됐고 후배들의 활약으로 이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모처럼 출장기회를 얻은 후배들이 “제발 시험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한바탕 웃은 기억이 있다.

당시의 동료들 가운데 현재 프로 구단의 감독과 코치도 있고,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후 명예퇴직으로 은행을 떠난 동료도 있고, 세상을 떠난 동료들도 있고, 필자처럼 시험에 합격해서 계속 은행에 남은 동료들도 있다.

지금은 프로가 출범했고 당시처럼 운동하면서 직장에서 시험을 치르는 일은 없어졌다. 지금의 프로선수들에겐 그 때의 상황이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운동과 공부를 병행했던 그 시절에 우리는 농구선수이면서 은행원이었다. 시험은 농구보다 더 힘들었지만 가끔 직장생활이 힘이 들 때는 그때 이국에서 합격 소식을 듣고 밤새 인생을 논하며 술을 마신 그들이 보고 싶고 그 시절이 그립다.

/기업은행 서소문지점 Fine Leader 정재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