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부녀지간이었을까.

10여년 전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서커스단 아동학대 사건’의 서커스 소녀 지정옥(23·당시 이름은 심주희)씨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최동선(55·현 마포서 수사과장) 경정의 끈끈한 인연이 화제다.

8일 지씨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사랑을 베푼 최경정을 찾았다. 150㎝가 조금넘는 나지막한 키에 튀어나온 광대뼈. 10년전 얼굴 그대로다. 둘은 서로 많이 닮아 친 부녀지간이란 얘기를 들어왔고 지금은 실제 그렇게 지내고 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아기는 어떻게하고 혼자 왔어.”

지씨는 몸이 아파 시어머니에게 맡겨놓은 10개월 된 아들 태영이의 사진을 들고와 최경정에게 보여줬다. 최경정은 자신의 친손자를 보듯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둘이 처음 만난 것은 91년 10월. 지씨가 학대가 유달리 심했던 당시 서커스단을 탈출했을 때였다. 잠시도 쉴틈없이 밧줄위에서 중심잡기, 벽돌위에 물구나무서기 등 기술을 익혀야 하고 살찐다고 먹고 싶은 밥도 굶어야 했다. 또 실수할 때마다 회초리를 맞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나날을 견디지 못한 지씨는 3번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남대문서 형사계장이었던 최경정이 이 사건을 담당했고 서커스단 단장은 아동학대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최경정은 의지할 곳 없이 사회시설을 떠돌아야 했던 지씨를 따뜻하게 보살펴왔다. 아동보호소에 보내진 지씨는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그녀가 열여섯 살 되던 해 보내진 곳이 윤락녀들의 재활을 위해 기술을 가르치는 서울여자기술학교.

이 곳에서 미용기술을 배우던 그녀는 방화로 인한 화재사고에서 연기에 질식, 한달동안 사경을 헤맨 적도 있다. 고통스런 삶에 부분 기억상실증에 걸려 경기도 오산에 있는 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이렇게 외롭고 힘든 순간마다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준 사람이 최경정이었다. 봉급을 쪼개 용돈을 부쳐주고 옷도 사주며 집으로 데려와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도 하고 엇나가려는 지씨에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지난 99년에는 지씨의 생모를 찾아주기도 했다.

지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지내던 중 택시기사 함종명(32)씨를 만나 아들을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지금은 13평 임대아파트에 영업용 택시지만 3년 후에는 예쁜 드레스 입고 결혼식도 올리고 개인택시사장의 사모님 소리 들어보는 것이 그녀의 작은 꿈이다.

최경정은 오는 9월 아기 돌 때 예쁜옷을 사들고 돌잔치에 가겠다는 약속도 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