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마을은 고향의 고향이다. 원형을 잃어버린 마을들은 하회를 그리워한다. 하회마을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전통마을 가운데 하나다. 많은 관광객들이 하회를 찾고 있는 것도 자신의 고향에서는 이미 잊혀진 것들을 여기서는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하회마을은 만인의 고향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작 문화의 뿌리를 찾는다면서 하회마을을 탐방 후보지에만 올려만 놓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곳을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고 접근해야 식상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하회마을을 둘러보면서도 망설임은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강 건너에서 절벽을 이루고 있는 부용대 정상에 올라서서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 문제는 싱겁게 결론이 나고 만다.

부용대에서 바라본 하회마을을 얘기하면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요즘에는 나룻배도 쉬고 있어 구담 쪽으로 한참 돌아서 다리를 건너가야 하기에 부용대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줄어들었다. 물론 사람의 발길이 뜸하기 때문도 아니고 단순히 경치를 보자는 것도 아니다. 하회마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면 옛사람들의 공간과 모듬살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강 건너에는 남산이 병풍을 치고 있다. 그 밑으로 안동댐에서 흘러온 낙동강물이 화천이 되어 마을을 감아 돈 뒤 태극 무늬를 그리며 구담 쪽으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마을이름이 하회(물돌이)인 것이다. 다음에 마을을 빙 둘러 감싸고 있는 눈부신 백사장과 울창한 솔숲(만송정)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조경 가운데 압권인 솔숲은 냉난방 장치이기도 하다. 부용대와 원지산 사이 들에서 불어오는 삭풍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내보낸다.

지도와 일일이 대조하면서 집과 마을이 어떻게 들어서 있는지 확인해 보자. 강가에는 솔숲을 바라보고 원지정사와 빈연정사 두 채의 정자가 있다. 지금은 풍산을 거쳐 마을로 들어오지만 예전에는 배로 건너서 들어오기 때문에 도선장이 마을 어귀였을 것이다.

대개 씨족마을로 들어서면 점점 지형이 높아지면서 정자, 일반 주택, 종가와 사당, 재실, 선산 순으로 배치가 되어있다. 안길을 따라 들어가다 고샅을 지나면 솟을대문이 우뚝 서 있고 살림집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정자라는 공공장소와 개인 살림집이 안길과 고샅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대건축에서 결여된 것 중에 하나가 이같은 공동체 중심의 공간구성이다.

하회마을에서는 정자와 안길이 곧바로 연결되어 있지 않지만 어느 안길로 가든지 강가로 뚫려 있어 결국에는 정자와 연결된다. 게다가 강 건너에는 옥연정사와 겸암정사가 마주 보고 있어 하회 공동체는 강으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강까지 아우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옛사람들은 자연경관이 잘 보이도록 정자를 짓고 눈에 보이는 안대까지 마을공간으로 여기곤 했다.

전통마을이 자리잡는 조건은 어쩌면 단순하다. 마을의 어원이 모을 이 듯이 여럿이 모여 집을 짓고 평화롭게 살만한 땅이면 된다. 농사짓기에 풍부한 물은 있는지 집을 짓고 땔감으로 쓸 재목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를 따져서 고른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배산임수 가 바로 그런 입지조건을 충족시켜 준다. 산을 등지고 3면이 둘러 쌓여 있으면서 계곡에서 흘러온 냇물이 집 옆으로 흐르고 앞에는 농경지가 펼쳐진다. 이것은 환경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하다. 방풍림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각종 쓰레기는 퇴비로 쓰이면서 생활하수는 냇물의 수초에서 자연정화되는 전통마을의 시스템을 최근에 와서야 생태학자들은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그런데 하회마을은 전통적인 배산임수 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면 동쪽 화산 기슭에 농경지가 있고 하회마을은 농경지 다음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말 류종혜가 풍산에서 살다가 이주해 올 때 허씨와 안씨가 화산 기슭을 차지 하고 있어 강가 둔덕에 자리잡았다는 설이 있고, 주산(화산) 좌청룡(남산), 우백호(화산자락), 안산(원지산)으로 지세가 완벽한 명당에 마을을 잡다보니 자연히 농경지는 지금의 화산 기슭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입향조가 혈에 심은 느티나무는 지금 600살이 넘었다. 북촌댁에서 고샅을 빠져나와 남쪽으로 조금 가면 또 고샅이 나오고 삼신당 이라고만 쓴 팻말이 보인다. 거기서 기역자로 꺾어서 들어가면 어른 네 다섯명이 팔을 벌려서 맞잡아야 할 만큼 큰 느티나무가 있다.

하회마을에서 모든 길은 삼신당으로 통한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화산의 서낭당에서 삼신당까지 별신굿이 이어지며 삼신당에서는 하회별신굿탈춤이 벌어진다. 하회마을은 삿갓모양처럼 가운데가 둔덕을 이루고 삼신당을 중심으로 길이 방사선으로 뻗어있다. 이렇게 삼신당은 화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토담으로 둘려쌓여 가리워져 있는 느낌이다. 관광객들도 길가에 팻말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것이다.

안대를 고려해서이겠지만 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남촌댁 등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집들이 모두 정면을 강 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집마다 남향을 고집하지 않고 좌향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그 집들이 배산임수를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은 없지만 둔덕이 있고 삼신당이 상징적인 산이 되어주고 있으므로 삼신당을 등지고 마을을 감싸고 도는 강을 따라 집들은 원을 그리며 들어서 있다. 개인 살림집의 좌향 보다도 공동체 전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더 중요시한 공간구성이다. 그리고 그 집들이 하루아침에 지어진 것이 아니듯이 그같은 공간관념도 매우 뿌리 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리학적 주거관에 철저했던 선비들은 상하좌우 위계질서를 따지고 성속의 구분에 따라 집들을 배치했지만 무엇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시했다. 집은 삶의 거처일 뿐 아니라 사상의 거처이기도 했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당을 지으면서 10여년간 집터를 물색했으며, 손수 설계도를 그려 집을 지었다. 건평이 8평여에 불과한 집을 지으면서 4년이나 걸렸다고 하니 그 신중함에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하회의 공간 구성에는 당연히 풍수지리사상이 깔려있다. 하회의 형국에 대해서는 배떠나는 행주형이라든가 물 위의 연꽃형이라든가 다리미형이라든가 산태극, 수태극 이라고 해서 태극형이라든가 설이 구구하다. 마을이 배 모양이거나 다리미형이기 때문에 우물을 파지 않고 강에서 물을 길어먹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우물을 파면 정말 나쁜지 여부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공간관념을 공유하면서 심리적 명당을 유지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풍수지리적인 해석이 무조건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바탕에는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면서 합리적인 생활을 도모하는 지혜가 깔려있다. 하회의 만송정은 허한 것을 보충하는 비보림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방풍림이기도 하다. 예부터 산을 등지고 앞에 연못이 있으면 살림집 자리로 최고로 쳤다. 그런 집터는 조망도 좋고 여름철에 시원하며 배수가 잘 된다. 명당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장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하회마을을 둘러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참 아늑하다는 점이다. 배 모양의 마을이 가라앉을까봐 돌을 쓰지 않고 흙을 다져 세운 토담이 포근하고, 담 위로 뻗은 가지에 탐스럽게 열린 빨간 감이 정겹다. 길은 지형에 어울리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 지붕은 가까이 있는 좌청룡 우백호 산 봉우리를 닮았고 지붕 위의 벌레를 잡아먹는 까치는 통통하다. 아흔아홉칸집 팔작지붕이라고 해도 주산의 위용을 넘보지 않는다.

화산의 지맥이 이어져 있다고 하는 충효당(보물 414호)의 뒤뜰에 가보자. 안채 부엌의 뒷문으로 나가면 갑자기 넓은 뜨락이 나온다. 거기서낮은 담 너머로 화산이 보인다. 충효당 뒤뜰에서는 사찰 마당에 들어선 것처럼 고즈넉하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다. 안채 대청 바라지문을 열면 역시 화산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안채 중문 밖 경관이 행랑채로 가려져 있는 대신 화산을 안대로 삼은 것이다.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서애의 아버지 입암 류중영과 형 겸암 류운룡이 살았던 양진당(보물 306호)은 남향집인데 반해 서애 후손이 지은 충효당은 주산과 안산이 이어지는 자리에 자리를 잡아 서향에 가깝다. 그것은 풍수지리상 의미심장하다. 하회가 풍산 류씨 세거지로서 국가적인 양반마을로 발돋움한 것은 바로 그 집이 들어서면서부터 일 것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오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