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며 마을 지킨 성황당 할아버지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화장을 고치고 있던 무녀가 불쑥 묻는다. 왜 강릉으로 안 가시고 이리로 오셨죠? "아, 예 살아있는 굿을 보려고요." 얼떨결에 한 대답이 무녀의 웃음을 산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말이 더 적절했을지 모른다. 민속학자 주강현씨와 함께 단옷날 어디로 갈까 물색을 하다 그의 공동저서 조선땅 마을지킴이 에서 후보지를 골라 전화를 걸었다.

몇군데서는 성황제만 지낸다 했지만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에서는 마침 이틀 동안 별신굿을 한다고 했다. 강릉단오제가 너무 유명하다보니 가려져서 그렇지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는 2∼3년마다 단오굿을 하는 마을이 많다.

그런데 초곡리로부터 뜻밖의 주문을 받는다. 성황당 할아버지 할머니 신상을 찍은 사진을 구해달라는 것이다. 동해안 산불로 성황당이 불타버렸는데 당집은 새로 지었지만 그림은 미처 준비를 못했다는 것. 너무도 공교롭지 않은가. 방금 조선땅 마을지킴이 에서 그 신상 사진을 보고 전화를 했는데. 사모관대를 한 할아버지는 부채를 들고 있고 할머니는 매화가지를 들고 있는 부부상이다.

무엇에 홀린듯 부랴부랴 칼라복사를 해서 가지고 내려갔다. 이장 이상희(60)씨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사진을 받아들고 곧바로 성황당 신위 앞에 모셔놓는다. 사라호 태풍이 덮쳤을 때도 배 하나 까딱 못하도록 마을을 지켜준 지킴이가 아니던가. 이번 화재 때도 불길이 성황당만 타고 스쳐지나가 할아버지가 스스로를 태우면서 마을을 구해주었다고 주민들은 믿고 있다. 무녀들은 무가를 부르면서 애드립으로 이 사실을 계속 강조한다.

마을회관 앞은 몬쥬익의 영웅 황영조씨의 본가다. 부두를 등지고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몬쥬익 언덕 같은 구릉이 가로막고 있다. 그 위로 차도가 지나가고 마을길은 굴을 통해 성황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칠을 안해 벌거벗은 듯한 성황당 주변에는 불에 그을린 향나무와 미녀송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하지만 신의 승선을 기다리는 용선과 호개등은 화려하다.

성황당 안으로 들어가보자. 신위를 모셔놓은 감실에는 제물이 올려져 있다. 시렁에도 돼지머리며 과일이 한 상 잘 차려져 있다. 그 밑에 황영조 본가 라고 쓴 글이 눈에 띈다. 할아버지 도움으로 황영조가 나왔다는 원력의 과시로 보인다. 찬조금이 계속 들어왔고, 돈 액수가 적힌 흰 종이는 주렁주렁 늘어만 간다. 어촌계장 김성복(57)씨가 초곡리를 소개한다.

"잘 살지도 못 살지도 않는 보통 어촌이랍니다. 1백3가구에 2백56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죠. 정치어망이나 자망으로 주로 방어 고등어 오징어 우럭 광어 그리고 잡어를 잡는데 연간 평균수익은 1천7백만원 이쪽 저쪽입니다. 정월 초이튿날에 건립한 백미며 돈을 모아두었다가 2년마다 굿을 해요. 매년 정월 대보름하고 음력 11월 3일에 제사는 꼭 지냅니다. 굿 비용은 7∼8백만원 들어요. 절반 가량은 굿패에게 주고 나머진 제물과 음식 준비에 쓰이죠. 이번에 온 무녀들은 인간문화재 김석출의 세 딸들이예요."

동해안의 굿패들은 세습무로 대개 김석출씨 일가붙이들이다. 강릉 단오굿의 보유자였던 고 신석남 무녀가 근덕면 사람이고 부산으로 이주한 김석출씨도 한때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동해안 굿의 양대계보를 배출한 지역인 셈이다. 예전에는 초곡리 굿이 강릉보다 컸어요. 옆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그런데 지금 관심 있게 보아줄 외지인은 혼자 뿐이다.

동행하기로 했던 주강현씨는 급한 일로 못오고 나중에 민속연구가 한 사람만 강릉 갔다가 소식 듣고 달려왔다. 초곡리 별신굿은 도시축제에 편입되거나 보여지기 위한 굿이 아닌 순수한 마을굿이라는데 매력이 있다. 주민들의 표정이 살아있는 굿이다. 그러나 굿을 본대로 전달하기 힘들다는데 딜레마가 있다. 청보장단이니 제마수장단이니 애기해봤자 무녀의 고운 춤사위, 노래, 어기여- 하는 양중의 바라지, 그 슬프고도 흥겨운 감흥은 제거되고 만다.

김석출씨 셋째딸 김동언(46) 무녀가 부정굿으로 굿을 시작하는데 장고를 잡은 양중(악사)은 남편인 김동열(49)씨다. 징은 아들 김진환(21), 꽹과리는 두째딸 김동연(50) 무녀의 아들 정연락(26)씨가 잡았다. 무녀의 노래와 남편의 장고 장단. 여기서 빚어지는 고도의 화음이 동해안 굿의 중심음이 아닌가 보여진다. 사실 동해안 굿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부부 또는 섹스다. 부부신의 교감이 풍요를 낳는다.

강릉 단오굿에서는 남녀 성황당 신위가 합방을 한다. 여기 성황당에는 부부상이 모셔져 있지만 부둣가 해신당에는 여신이 따로 있다. 오래된 향나무가 바위를 감싸며 낮게 자라 여자의 치마처럼 보인다. 신들을 굿당에 모시는 청좌굿을 한 다음 신대를 앞세워 해신당으로 가서 당맞이굿을 하면서 남녀신이 합환의 기쁨을 누린다. 남쪽으로 4km쯤 내려가면 원덕읍 신남리 해신당이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는 처녀상에 남근목을 깎아 바치고 있다.

굿거리가 진행되는 동안 섹스의 상징은 심심찮게 나온다. 양중이 진행하는 거리굿에서는 짚으로 커다랗게 만든 남근을 이장보고 달게 해놓고 아낙네들에게 복전을 얻도록 시킨다. 굿거리 하나 하나가 운우지정의 과정처럼 보이는 것은 섹스를 키워드로 삼은 부수적 효과다. 무녀는 한복에 철릭을 걸치고 흰꽃이 달린 흰띠를 머리에 두르고 나온다. 부채와 수건을 양손에 들고 제단 앞으로 나와 무악에 맞춰 천천히 춤을 춘다. 춤사위는 짧고 곱다.
무가를 부를 때는 장고와 징만 치다가 제단 쪽으로 물러나며 다시 춤을 출 때는 꽹과리가 요란하게 거든다. 무가를 부를 때는 소리를 내지르듯이 부른다. 장단은 점점 빨라진다. 현란한 기교 때문에 빨라지는 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나중에 무녀는 손만 흔든다. 이 때 무가의 선율은 쾌지나칭칭 나네 를 떠올리면 딱 맞다. 굿 거리 중간에라도 지루하다싶으면 무녀는 민요나 유행가를 불러 주민들이 한바탕 춤을 추게 한다.

무녀와 주민 사이에 벌어지는 에로티즘도 눈길을 끈다. 주민들은 복전을 무녀의 가슴띠에 꽂아준다. 가슴띠는 음복으로 불콰해진 남정네들이 유혹을 느끼게 하는 장치다. 민속학자들은 예전에 별신굿이 끝나고 난장에서 벌어진 섹스파티도 풍요를 비는 제의의 일종이었다고 보고 있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 유지들은 무녀들의 집요한 복전 요구에 시달린다.

다른 종교도 돈으로 움직이만 매우 현실적인 종교인 무속에서 유독 돈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무녀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하다 보면 과용할 때도 많다. 그래서 올해는 돈표를 1백50만원 정도만 발행, 조금씩 지갑을 열고 있다. 복전 요구는 우리의 독특한 흥정문화와 닮았다.

무녀가 랩을 한다. 당맞이굿에 이어 성황당에서 계속된 세존굿에서 한순례(56) 무녀가 고깔을 쓰고 당금애기설화를 구송한다. 판소리 아니리처럼 말로 하는 부분을 길게 하다 창을 하곤 한다. 이 무속신화를 보면 우리 기층문화의 얼개가 보인다. 줄거리는 이렇다. 당금애기가 시주를 온 스님에게 몸을 허락하여 임신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버림받는다. 스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석가여래다. 당금애기는 아들들을 낳고 스님을 찾아가 무속신이 된다.
같은 무속신화이면서도 서울 무가에서 구송되는 바리공주 설화는 당금애기와 또 다르다. 바리공주는 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나 버림을 받지만 무장승의 아이를 낳아주고 생명수를 얻어 왕과 왕비를 살리고 무속신이 된다는 얘기다. 중요한 차이는 당금애기는 효녀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바리공주 설화가 유교에, 당금애기 설화가 불교에 더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당금애기 설화는 가족이니 윤리니 하는 것을 무시하고 있다. 동해안 굿은 분명 기층민에게 억압구조였던 봉건사회 가부장적 질서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근대성은 물론 탈근대성까지 엿보이고 있다.

물론 굿의 형식은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무가를 가만히 들어보면 여기 이 땅에서 사는 문제가 끊임없이 불리어지고 있다. 장군과 전사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놋동우굿에서는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을 위로한다. 그러나 과거의 얘기라고 해서 무용한 것은 아니다. 천연두같이 퇴치된 병을 걸리지 않게 기원하는 모순을 담은 손님굿에서 조차 무녀의 힘은 여전히 오늘을 반추하게 하고 있다.

"나도 7살에 천연두를 앓았어. 해방곰보야.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 세상 떠나보냈지."
김석출씨 첫째딸 김영희(60) 무녀는 손님굿을 이렇게 시작한다. 무녀는 마마에 걸려 얼굴에 꽃이 피고 얽고 죽는 과정을 리얼하게 노래하여 심금을 울린다.

굿거리는 창작되기도 한다. 동해안 굿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심청굿은 판소리 심청전의 영향을 받아 시작한 것이다. 심청전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준다는 점에서 바리공주 설화의 어촌 버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심청은 남성성인 바다에 바쳐진 여성 제물이란 점에서는 해신당의 여신과 의미를 공유한다. 초곡리 별신굿은 풍어제다. 마지막에는 부둣가 모래사장에 굿청을 마련하고 용왕굿을 한다. 풍어의 염원을 담은 무녀의 노래는 해풍에 실려 바다로 울려퍼진다. 무가는 출렁대는 바다의 물결소리 같기도 하고 갈매기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굿은 용왕도 반할만하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의 보존은 누구에게 빌어야할 것인가.

<글/오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