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대정책 철회” 對美압박

적대정책 핵심은 결국 ‘제재’
철회를 협상 전제조건 내걸어

연말 시한 오자 본심 드러내
실무협상前 기선제압 의도도

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19일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이란 수식어까지 붙이면서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연내 미·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대미 요구조건을 분명히 한 것으로, 연말까지 미·북 간 치열한 기싸움이 전개될 양상이 커졌다. 하지만 ‘중재자’ 역할을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으로 미국과 껄끄러운 상황에서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이 북한 비핵화 협상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통일부 등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3일 국무위원회 대변인을 시작으로 이날 김 위원장의 담화까지 최근 일주일간 6차례 담화를 발표하면서 미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동시에 향후 미·북 협상에서 요구할 선결 조건과 의제도 갈수록 구체화하고 있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전날 “미국은 적대시정책부터 철회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밝히고, 김 위원장이 이날 또다시 적대시정책 철회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조건을 요구하고 의제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 위원장은 담화에서 구체적 선결 조건도 내놓았다. 한·미 연합훈련의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는’ 중단을 언급한 것. 회담 여건이 조성되더라도 미국이 적대시정책 철회란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북한이 언급한 적대시정책은 한·미 연합훈련뿐 아니라 대북제재 완화,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문제 침묵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는 주한미군 감축·철수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하더라도 ‘제대로’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으로, 적대시정책 철회를 내세우며 회담의 책임을 미국에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북한의 이례적인 담화 발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서 느끼는 조급함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시한을 못 박은 만큼, 연내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시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실무회담은 건너뛰되, 지난 2월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처럼 회담 결렬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금강산 남측시설 일방 철거 방침을 통보했던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해서도 한국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북측은 금강산 시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측의 방북 요청에도 전혀 답하지 않고 있다. 대북정책에 ‘올인’했던 문재인 정부로서는 북한의 철저한 외면으로 외교적 입지가 더 좁아진 셈이다. 여기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이후 동맹인 미국과도 서먹한 관계다. 문성묵 한국전략연구소 통일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자신들이 핵을 포기하기 전에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시정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국 한·미 연합훈련을 영구 중단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정철순·정충신 기자 csjeong110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