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배치·原電가동 일시 중단 등
국회 협의 없이 일방 결정·지시
부적격 인사들 임명강행도 문제

“벌써 지지율이라는 독배에 취한 것 같다.”

한 야당 중진 의원은 1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총평해 달라는 요청에 이같이 답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취임 때부터 탈(脫)권위·소통 행보로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며 70∼80%의 높은 지지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오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반대로 불통 대통령의 전조가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전문가들도 “문 대통령이 국민과의 스킨십에는 적극적이지만 정작 정책 결정과 추진 등 국정 운영 면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갈라치기 행태도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많은 국민의 환호성을 자아냈던 문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행보에 이상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일련의 ‘대통령 업무지시’가 쏟아져 나오면서부터다.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한다는 게 1호 지시로 나오더니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임시 가동 중단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법무부·검찰 간부 ‘돈봉투 만찬’ 감찰 등이 뒤를 이었다. 대통령 지시라는 형식이 꺼림칙했을 뿐 대부분은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은 갈수록 도를 더해 갔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발사대 배치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실시,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가동 임시 중단과 공론화위원회를 통한 국민 의견 수렴 등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과 지시가 이어졌다. 사안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국회 차원의 사전 협의조차 전무했다. 야당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 및 언론과 충돌하는 것에 빗대 “문 대통령이 ‘트럼프식 행정명령’을 남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깎아내린 계기는 잇단 인사 파동이었다. 문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공약했던 ‘고위공직자 배제 5대 원칙’을 스스로 깨뜨려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과 주요 인사들 중 위장 전입, 논문 표절, 세금 탈루,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등 5대 원칙에 위배된 사례가 속출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최근 임명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까지 모두 이에 해당한다. 특히 문 대통령은 여당 내에서조차 부적격 평가를 받은 인사들까지도 임명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대통령이 지나친 조급증에 빠져 국회를 바이패스(bypass·우회)하고 있다”며 “청와대가 국정 전반에 대해서 야당은 물론 여당과도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이끌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남은 임기 동안은 조급증을 버리고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