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대통령 경호의 룰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탈권위적이고 소탈한 행보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유쾌한 정숙 씨’라는 별명을 갖게 된 김정숙 여사도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행보에 한몫했다. 맨 위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문 대통령이 지난 5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사저에서 청와대로 출근하는 길에 시민들과 셀카를 찍는 모습, 김 여사가 7월 21일 침수 피해를 본 충북 수해지역을 방문해 가재도구를 손질하는 모습, 문 대통령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 김소형 씨를 안아주며 위로하는 모습, 문 대통령이 5월 11일 참모들과 함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손에 든 채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는 모습이다. 자료사진

野 4당 지도부 먼저 찾아가고
작은 취임식서 ‘疏通領’선언
靑 앞길 50년 만에 시민 개방
박前대통령 비교 폭발적 반응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서
유족 포옹·위로 상징적 장면
수해현장 전례없는 직접 봉사
퍼스트레이디 소탈함도 한 몫

“사회 전반 脫권위 기대높지만
감성에 판단 흐려지는 건 경계”

탈(脫)권위·소통 행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지난 100일간 지지율 고공 행진을 구가할 수 있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야당들은 “집권 초 지지율은 믿을 게 못 된다”, “소통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쇼(show)통만 하고 있다”며 의미를 축소하려 했지만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잇단 인사 파동과 증세 논란 등 각종 악재 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70% 이상을 유지해 왔다.

전문가들은 격의 없이 시민들과 어울리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 행태로 인한 기저효과와 맞물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낳았다고 분석한다.

◇탈권위와 소통 행보의 일상화 = 문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행보는 취임 때부터 일관되게 이어졌다. 지난 5월 10일 국회의사당 본청 로텐더홀에서 진행된 작은 취임식은 그 예고편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 앞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 4당 지도부를 먼저 예방했다. 이어 취임사에서 “권위적인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후 탈권위·소통 행보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잇따라 국민 눈앞에 펼쳐졌다. 취임식 다음 날 문 대통령은 와이셔츠 차림으로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손에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권혁기 춘추관장 등 참모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이전 대통령들에게서는 보기 힘들었다.

문 대통령은 업무 공간도 바꿨다. 오직 대통령 1인을 위한 공간인 본관에서 벗어나 청와대 비서동에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이곳 비서동 이름을 위민(爲民·백성을 위함)관에서 여민(與民·백성과 함께 함)관으로 바꾸고 국민과 대통령이 함께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주체, 국민이 객체라는 위민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전 정부와 자연스러운 차별화를 꾀했다. 당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에게 바랐지만 도저히 볼 수 없는 장면들”이라고 평가했다.

전보다 청와대 문턱은 낮아졌고 대통령 얼굴 보기도 쉬워졌다. 청와대 앞길은 6월 26일부터 전면 개방돼 1968년 1·21 무장간첩 습격 사태 이후 약 50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청와대에 견학 온 초등학생들에게 깜짝 인사를 건네고 외출 중 만난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셀카를 찍는 모습 역시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

문 대통령은 언론과의 소통에서도 전임자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5월 10일 직접 청와대 춘추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서훈 국가정보원장 지명 사실을 발표하고, 인선 배경까지 설명했다. 5월 19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헌재소장 후보자로 발표한 것도 문 대통령 자신이었다.

◇국가 공식 행사도 변화 = 문 대통령의 파격적 탈권위 행보는 생중계로 진행되는 국가 공식 행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허용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유족 김소형 씨를 뒤따라가 포옹하며 위로를 건넨 장면은 문재인 정부의 탈권위 상징이 돼 취임 기념 우표첩에 포함됐다.

공식 행사의 의전도 달라졌다.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4부 요인이 아닌 목함지뢰 사건 부상자 김정원·하재헌 중사 곁에 앉았다. 6·25 전쟁 당시 포병으로 복무한 국가유공자를 직접 부축하기도 했다. 관례에 따르기보다는 행사의 취지에 충실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문 대통령은 SNS를 이용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취임 후에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32개의 글을 직접 올렸다. 반려동물인 토리, 찡찡이, 마루가 서로 친해지길 기원한다거나 청와대 관람객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등의 소소한 일상까지 국민에게 전달됐다.

◇퍼스트레이디의 전폭 지원 = 명랑한 품성으로 ‘유쾌한 정숙 씨’라는 별명이 붙여진 김정숙 여사의 소탈함도 문 대통령의 탈권위·소통 기조에 일조했다. 5월 13일 수수한 옷차림으로 사저에서 관저로 이사를 진두지휘한 김 여사는 민원인에게 라면을 대접하는 일반 시민의 면모를 보여줬다. 7월 21일 충북 청주시 수해 현장에서는 검은 앞치마, 밀짚모자, 고무장갑 차림으로 다른 봉사자와 똑같이 지원 작업에 나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 부인이 구호물품을 전달한 적은 있지만 수해현장에서 복구 작업을 직접 도운 건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야권 관계자는 “현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탈권위·소통 문화가 공직 사회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는 국민적 기대감의 반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감성적 요소가 여론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