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손 맞잡았지만…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지난 14일 국회의장실에서 정례 회동을 시작하며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정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협치 실현을 위해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30분에 만나는 것을 정례화했지만 여야가 걸핏하면 충돌하는 바람에 일부가 불참하거나 회동 자체가 무산되기 일쑤다. 왼쪽부터 김동철(국민의당)·우원식(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 의장, 정우택(자유한국당)·주호영(바른정당) 원내대표. 김동훈 기자 dhk@

文 정부 내각·청와대 인선때
與, 주도권 잃고 ‘뒤치다꺼리’
보조 역할로 ‘하명 기관’ 전락

野, 대선 참패 내부 봉합 못해
정책 파악 못하고 ‘반대 급급’
서로 믿지못하다 공조도 실패

“여당도, 야당도 존재감이 희미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100일간 국회와 청와대의 관계를 묻는 말에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17일 “여당은 청와대의 존재감에 묻혔고 야당은 당·청과 대결구도조차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문 대통령은 집권 여당 국회 의석이 전체의 40%(120석)에 불과한 여소야대 상황을 감안해 취임 당일 야당 지도부를 예방하는 등 협치를 위한 성의를 보였으나 내실 면에선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대선 참패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한 채 “협조도, 견제도 못하는 무능한 야당”이라는 평가를 들어야 했다.

◇청와대가 지배한 당·청 관계 =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당정 일체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여당인 민주당이 국정 운영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을 되돌아보면 민주당이 아닌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정을 주도해 왔다는 데 이견이 없다. 무엇보다도 문재인 정부 1기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 과정에서 여당의 역할은 보이지 않았다. 한때 추미애 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여당이 인사추천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이는 말뿐이었다. 김기정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2차장과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이 논란 속에 지명돼 낙마하기까지 민주당은 뒤치다꺼리에 급급했다. 심지어 청와대는 여당 여성 의원들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조차 ‘부적격’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힌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을 경질하지 않은 채 유야무야 시간만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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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눈치를 보는 ‘하명 기관’으로 전락하다 보니 민주당은 대야 관계에서도 주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첫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5월 19일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추경안 처리를 당부하고 6월 12일 추경안과 관련해서는 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국회 시정연설에까지 나섰지만 추경안은 야당의 반대에 발목이 잡혔다. 그러자 청와대가 나섰다. 특히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이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머리 자르기’ 발언에 격분해 돌아서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리 사과를 통해 돌파구를 열었다. 물밑 협상은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이 맡았다. 우여곡절 끝에 추경안은 처리됐지만 민주당 중진 의원들 사이에선 “청와대가 직접 개입하면 야당이 여당을 카운터파트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우려 섞인 불만이 나왔다.

◇통 큰 협조도, 강력한 견제도 못한 야당 = 야당들은 그야말로 ‘제 코가 석자’였다. 대선 참패의 충격 속에 내부 봉합에도 급급하다 보니 정부 견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한국당 등은 주로 문재인 정부 1기 내각 인선에 대해 제동을 걸며 존재감을 드러내려 애썼지만 자체적인 후보 검증과 이슈화 면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야당 인사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 참사는 문 대통령이 대선 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고위공직자 배제 5대 원칙’에서 비롯됐지, 야당들의 성과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야당들이 문재인 정부의 조기 안착을 위해 통 크게 협조한 것도 없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당론에 따라 반대를 위한 반대에 급급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야당들이 지리멸렬하다 보니 청와대의 독주는 계속됐다. 중도부터 보수까지 이념 스펙트럼이 넓기에 야당끼리 ‘일단 공조’를 했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어느 한쪽이 돌아서는 일이 많았다. 추경안과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한국당을 배제한 채 민주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공조하는 일이 반복된 게 단적인 예다. 여당이 한국당을 때림으로써 다른 야당들과 갈라치는 전략은 이제 국회 운영 과정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한국당의 리더십이 부재했던 탓도 있지만 야당끼리 서로 믿지 못하다 보니 야권 공조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도 “야당끼리 믿지 못하니까 제대로 된 반대를 하기도, 나 홀로 여당에 협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후연 기자 leewho@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