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기술·신물질 사용 땐
암살 배후 규명 어려울 수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의 실체가 사건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독극물이 통상 암살에 사용되는 것과 다른 새 화학물질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독극물이나, 시신에 독약 성분을 남기지 않는 고난도 기술이 사용됐을 경우 정확한 사인이나 암살 배후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20일 말레이시아 경찰의 중간 발표 기자회견 등에 따르면 현지 수사 당국은 김정남 살해에 쓰인 독극물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AP 통신은 19일 김정남을 극히 단시간에 죽음에 이르게 한 치명적 독극물의 정체와 그 배후를 확인하는 게 이번 사건의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남 피살 당시의 쿠알라룸푸르 공항 CCTV를 살펴보면 김정남은 여성 용의자 2명에 의해 스프레이와 천 공격을 받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별다른 외관상의 이상 없이 공항을 걸어 다녔던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에는 중독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정상적인 행동을 보인 데다 상당 기간 걸어 다녀 주변인들도 눈치를 채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에 사용된 독극물은 독극물에 노출된 당사자도 처음에는 중독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인 반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치사율이 어느 독극물보다 높아 암살 등에 사용하기 적합한 새로운 물질인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군이 ‘독침 암살’에 사용해 오던 ‘브롬화네오스티그민’, 일반 독살에 많이 사용되는 ‘청산가리’, 흡입·접촉으로 몇 분 안에 죽게 하는 ‘사린’, 신경성 독가스 ‘VX’ 등은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물질은 비교 대상이 없어 검출돼도 무슨 물질인지 알 수가 없다.

또 김정남 암살에 사용된 독극물이 시신에 독약 성분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고난도 기술이 적용된 화학물질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8일 말레이시아 중문매체 중국보(中國報)에 따르면 유명 군사평론가인 핑커푸(平可夫)는 경찰이 김정남의 시신을 다시 부검하더라도 어떤 결과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캐나다의 군사평론지 칸와 디펜스리뷰의 총편집인 핑커푸는 이번 암살 수법이 강한 심장 쇠약을 초래해 외관상으로 심장 발작에 의한 ‘자연사망’처럼 보이도록 하는 과거 소련의 KGB 방식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