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휴진을 앞두고 정부가 의료계에 건강보험제도 개편 등을 약속하면서 큰 틀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원격의료 시범사업 후 입법,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수련환경 개선 등 의료계가 요구했던 사항이 합의안에 대부분 포함되면서 24일 집단휴진이 철회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 개편이 의료수가 인상으로 이어질 경우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건강보험료 상승이 불가피할 수 있어 시민단체 등의 반발도 예상된다.

◆ 의료계 요구 대부분 수용 = 원격의료는 오는 4월부터 6개월간 시범사업을 시행한 뒤 입법이 추진된다. 시범사업의 기획, 구성, 시행, 평가는 대한의사협회의 의견을 반영해 의협과 정부가 공동으로 수행한다. 지난 10일 의료계 집단휴진 전에 정부는 ‘입법 후 보완’을 주장했었지만, 이번 협상에서 의협의 요구대로 ‘선시범사업, 후입법’으로 양보했다. 또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에 대해서는 진료수익 편법 유출 등의 우려사항에 대해 의협, 병원협회 등 의료계 논의 기구를 마련해 보완키로 했다.

또 최근 높은 업무 강도를 호소하며 집단휴진 동참을 선언한 전공의들의 처우개선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양측은 ‘(가칭)전공의 수련환경 평가기구’를 신설해 수련환경 평가 대안을 5월까지 마련키로 했으며, 전공의 유급 조항을 폐지하고, 의사인력 공백에 대한 보상 방안도 올해 말까지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현재 주당 108시간 수준인 전공의 근무시간이 장기적으로 유럽(48시간) 수준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집단휴진과 의·정 협상의 핵심으로 평가받던 건강보험제도에 대해서도 양측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개편하고, 의료수가 협상 결렬 시 별도의 ‘조정소위원회’를 두기로 합의했다.

◆ 건강보험료 인상 우려도 = 오래전부터 ‘저수가’를 주장해온 의료계는 매번 수가를 결정하는 건정심의 개편을 요구해 왔다. 이번 합의에서 정부는 이 같은 의료계 요구에 응했다. 현행 건정심은 의료계 등 공급자대표, 시민단체 등 가입자대표, 정부 및 학계 등 공익대표가 각 8명씩 총 24명으로 구성됐는데 이 중 공익대표의 구성을 개편한다는 것이다. 양측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전문가 4명 등 총 8명으로 구성된 공익대표를 가입자(시민단체 등)와 공급자(의협 등)가 동수로 추천해 재구성하는 데 합의했다. 의협 등은 기존 건정심의 구성에 정부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의료수가 인상을 억제하는 정부 측 인사를 최대한 줄여 수가 인상을 관철시키는 것이 본래 목적으로 풀이된다. 또 건정심에서 의협 등 가입자 단체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건강보험 수가 결정이나 건강보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도 예상된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건강보험료 인상 등의 우려가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17일 “건정심은 가격뿐만 아니라 정책도 결정하는데, 직접 이해당사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현재의 시스템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불합리한 구조”라며 “정부가 집단휴진 철회를 위해 무리하게 건강보험 수가를 인상할 경우 국민적 불만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24일 집단휴진 철회 가능성 = 의협은 협의 결과를 20일까지 전체 회원 투표에 부쳐 24일 집단휴진 철회 여부를 결정한다. 투표에서 이번 합의안이 채택될 경우 합의를 공표하지만, 부결되는 경우 협의안을 전면 무효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의료계 입장을 사실상 대폭 수용하면서 24일 집단휴진은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형병원의 한 관계자는 “의료계도 장기간 집단휴진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애초 건강보험제도 개편 등이 주된 요구사항인 것을 감안하면 집단휴진을 강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