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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논설위원

디즈니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백설공주’가 흥행에 참패했다. 2억5000만 달러(약 3678억 원) 이상 투입된 영화는 지난 주말까지 북미 개봉 열흘간 6680만 달러(약 983억 원) 수입에 그쳤다. 흑인 가수 겸 배우 핼리 베일리의 ‘인어공주’에 이은 2연속 참패이자 ‘인어공주’보다 못한 디즈니 실사 중 최하위 성적이다. 리뷰 플랫폼 로튼토마토 평론가 평가는 100% 만점에 41%. 한국에서도 비평가 평가도 대중의 선택도 얻지 못했다. 우려대로 지나친 정치적 올바름(PC주의·Polotical Correctness)이 빚은 참패다.

‘백설공주’는 1812년 처음 출간된 그림(Grimm) 형제 동화가 원작이지만, 디즈니가 재창조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1937년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첫 장편 애니로 디즈니 102년 역사에서 그 어떤 작품도 따라가지 못한 대성공작이다. 예쁜 공주가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했다’는 이야기는 신데렐라와 함께 ‘백마 탄 왕자’ 판타지의 양대 축을 이루며 그 뒤로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원형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반(反)여성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많은 여성으로부터 딸에게 권할 수 없는 이야기로 낙인찍혔다.

시대 변화를 수용한 디즈니는 이번엔 ‘눈처럼 흰’ 백설공주를 라틴계 배우로 바꾸고 백마 탄 왕자는 없앤 뒤 사악한 왕비에 대항해 왕국을 되찾는 이야기로 바꿨다. 과도한 PC가 원작을 훼손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독일 ‘슈피겔’지 미국 특파원 르네 피스터는 책 ‘잘못된 단어’에서 PC주의가 독단주의가 되어 정치부터 문화까지 미국 일상 모든 곳에 스며들었다고 경고했다. 이는 ‘백설공주’에도 적용되는 진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같은 다양성과 PC주의 덕분에 K-영화, K-팝 등 K-콘텐츠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과도함이 문제이지 다양성은 죄가 없다. ‘백설공주’ 실패는 지나친 PC주의만큼이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200여 년 전 여성이 직업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해 결혼 외에는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던 시대의, 이미 생명이 다한 이야기를 붙들고 엉성한 서사로 얼기설기 엮은 뒤 PC를 범벅해 내놨기 때문이다. 게으름이 문제였다. 예술은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K-콘텐츠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