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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종 논설위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일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중대 결단”을 하겠다고 한다. 이미 탄핵 기각돼 복귀한 한 대행을 다시 탄핵하고, 또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탄핵하겠다는 의미다. 나아가 친야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는 자신의 SNS에 모든 장관을 다 탄핵하는 ‘총탄핵’으로 정부를 무력화하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권한을 행사하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글을 공유했다.

불행하게도 이 글대로 진행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지 않는다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이런 극단적인 일도 서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우리가 그래도 헌법기관, 즉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헌법재판소 등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그런 확신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2021년 1월 수천 명의 폭도가 미국 워싱턴DC 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사건은 충격이었다. 더욱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승리를 인정할 수 없었던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도둑질을 멈추게 하라”며 난입을 선동한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다. 우리도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국회와 선관위를 접수하고자 했을 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탄핵소추권을 가진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자신들의 권한으로 정부를 작동 불능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바버라 F 월터 교수는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가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고 위기 상황이 발생해도 금세 회복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어 왔지만 오판’이라며 국가가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도 아닌 중간 상태를 아노크라시(anocracy)라고 명명했다. ‘특정 집단의 정치적 배제’ ‘제도의 약화’ ‘소셜미디어를 통한 분열의 확산’ ‘경제적 불평등 심화’라는 4가지 징후가 있을 때 작동한다고 밝혔다.

월터 교수는 ‘아직 한국이 이런 상태는 아니다’고 했지만,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 선진국이던 한국이 졸지에 아노크라시 상태로 갈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지만, 몰락은 순식간이다.